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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이곳에서!

중앙일보 2014.04.03 00:02 14면 지면보기
남성의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바버숍. 이발·면도는 물론 휴식과 멋을 제공한다. 1920년대에 만든 이발의자와 예스러운 실내장식이 특징이다. 김현진 기자




외모 관리에 신경을 쓰는 남성들, 이른바 ‘그루밍족’. 멋을 위해서라면 여성의 옷을 입고 화장품을 바르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그들이 이제 ‘진짜 남자’가 되려고 한다. 외모에 관심 없이 일만 하던 남성들도 ‘신사 되기’에 동참했다. 숨겨져 있던 남자들의 욕망이 ‘바버숍’에서 표출되고 있다. 신사가 완성되는 곳, 바버숍을 찾았다.



신도희 기자



촬영 협조=헤아(Herr), 모델=이용준(에스팀)·최준석·김현수, 의상=브로넬로 쿠치넬리·알프레드 던힐·엠포리오 아르마니·에스티듀퐁·비씨디 By 비씨디코리아·쌍뜨오노레 by 갤러리어클락·보기(BOGGI)



봄 햇살에 나른한 오후 2시. 슈트를 말끔히 차려 입은 중년 신사가 두꺼운 가죽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바버(이발사)가 다가와 따뜻한 수건으로 신사의 얼굴을 감싼다. 잠시 후 바버의 손에서 만들어진, 솜사탕같이 풍성하고 하얀 거품이 신사의 턱을 감싸안는다. 사각사각, 쓱쓱. 길이 잘 든 바버의 면도칼이 거품을 가로지르자 신사의 수염은 깨끗이 사라진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잠시 여행을 다녀온 듯 평온한 표정의 신사가 눈을 뜬다. 입가에 해사한 미소가 가득하다.



바버숍, 유럽·미국에 이어 한국 상륙



고전영화 속 한 장면일까. 영국 런던의 길모퉁이에 자리한 오래된 이발소에서 바라본 풍경일까. 멀리 영국까지 갈 것도, 고전영화를 뒤져볼 필요도 없다. 지난주 서울 한남동의 한 바버숍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바버숍(Barber shop)’은 이발소를 뜻한다. 1804년 세계 최초로 이발소 영업을 시작한 프랑스인 장 바버의 이름을 따 바버숍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해 온 바버숍이 최근 전통미를 살린 남성의 공간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3년 전부터 다시 성행했다. 유럽 전통성에 세련된 상업성을 더한 뉴욕의 바버숍들이 미용실에 빼앗겼던 남성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바버숍 열풍은 한국에도 상륙했다. 서울 강남과 이태원을 중심으로 남성의 헤어 스타일링과 습식 면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버숍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서울 한남동의 한 바버숍은 매일 예약이 꽉 찰 정도로 남성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 바버가 고객을 찾아가 서비스를 하는 일명 ‘테이크아웃(Take Out) 바버숍’도 생겼다. 이발소보다 미용실을 찾던 남성들. 그들이 지금 바버숍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에서 이발소는 ‘중년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머리를 자르는 곳’으로 통한다. 스타일을 중시하고 멋을 추구하는 한국의 그루밍족 남성은 이발소 대신 미용실을 찾는다.



이와 달리 영국 등 유럽에서는 많은 남성이 미용실보다 바버숍을 이용한다. 이들에게 바버숍은 자신의 스타일과 멋을 제대로 가꿀 수 있는 장소다. 잉글랜드관광청 한국사무소 류영미 소장은 “영국에선 젊은층부터 노년층까지 대부분의 남성이 머리와 수염을 손질하기 위해 바버숍을 찾는다. 최근엔 남성이 많이 찾는 편집숍이나 샴페인바에도 바버숍 공간이 들어설 만큼 영국 남성의 필수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 바버가 맞춤형 스타일링 서비스 제공



남성이 바버숍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그야말로 ‘남자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바버숍 ‘헤아(Herr)’를 운영하고 있는 이상윤 대표는 “미용실에 갔을 때 느껴지는 어색함을 우리나라 남자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불편함을 해소시켜 주는 곳이 바로 바버숍”이라며 “금융·패션업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30~40대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고객층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0~20대 때 유니섹스 스타일을 즐겼던 남성이 나이가 들고 직업과 경제력을 갖추면서 자연스럽게 전통 신사 스타일로 관심을 옮긴 것 같다”며 “주로 남성미를 강조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고객이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슈즈숍·테일러링숍 등 늘어나는 남자의 공간



바버숍에서는 전문 바버가 1대 1로 헤어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타일링을 시작하기 전 고객의 얼굴형·체형은 물론 직업, 성격, 즐기는 운동, 슈트를 입는 주기까지 고려해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을 제안한다. 헤아의 수석 바버 김현수씨는 “바버숍은 비스포크 헤어커트, 즉 고객 맞춤형 헤어 스타일링을 추구한다”며 “고객이 원하는 헤어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적합한 가르마 비율을 찾고 주기적으로 커트를 한다. 대략 3개월에 걸쳐 스타일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평소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 정통 습식 면도를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3주에 한 번씩 바버숍에서 면도를 한다”는 김정한(36·서울 이촌동)씨는 “바버숍에서 습식 면도를 받고 나면 꼭 사우나에 다녀온 것처럼 개운하다. 숙련된 기술과 정성으로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바버숍 외에도 ‘남자만을 위한 공간’은 증가하는 추세다. 구두 손질부터 수선까지, 슈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남성 전문 슈즈숍과 맞춤 정장을 제공하는 테일러링숍도 늘어났다. 현대백화점은 다양한 브랜드의 포마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남성 전문 코스메틱 숍을 선보이기도 했다.



잇따라 생기는 남자만의 공간. 그런데 아직 이 공간들이 낯설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윤 대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라”고 조언한다. 그는 “영국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 바버숍에서 면도를 즐기곤 한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 멋을 추구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자신에게 조금씩 투자하다 보면 어느새 스타일은 물론 멋과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니어 2인이 말하는 바버숍의 매력



"아들과 함께 습식 면도 받으며 속 깊은 대화 나눠요”



올해 초 중학교 3학년인 아들과 함께 바버숍을 찾았어요.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나기 시작한 아들이 면도기를 빌려달라고 하길래 아들에게 첫 면도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죠. 의자에 앉아 면도를 받는 아들을 보면서 속으로 ‘근사하고 멋진 남자로 자랐으면’ 하고 바랐어요. 나란히 앉아 남자 대 남자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아들과의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 박준석(49·서울 압구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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