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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생활 하며 음악가로 명성 날린 림스키 코르사코프

중앙일보 2014.04.03 00:02 6면 지면보기
김근식 더클래식 대표
10여 년 동안 정신병원에 격리됐던 한 청년이 마침내 병동 밖 거리로 뛰쳐나온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뛰어가던 그는 카페로 들어가 손님들 앞에서 유쾌하게 피아노를 연주한다.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그 청년이 연주한 곡은 바로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1997년 1월 개봉된 영화 ‘샤인’의 한 장면이다. ‘샤인’은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알면 재미있는 클래식

 경쾌한 곡인 왕벌의 비행은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호주 출신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즐겨 연주하던 곡이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자신의 해군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 ‘술탄 황제 이야기’ 중 육지에서 바다까지 따라온 왕벌들이 선박과 선원을 습격하는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후대에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다.



 오페라 삽입곡이었던 이 관현악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사람은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다. 20세기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조르주 치프라가 자신의 피아노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재편곡했으나 난해해 정작 자신도 자주 연주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이 곡이 유튜브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피아노 독주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조회 수가 많으면 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곡을 연주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무성 관료 출신으로 음악가가 된 차이콥스키, 법학도에서 음악가로 변신한 슈만,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가야금 명인이 된 황병기 선생 등 뒤늦게 직업을 바꿔 음악가가 된 사람이 적지 않지만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이 된 뒤 음악가의 길을 걸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경력은 정말 특이하다. 여섯 살에 피아노를 배웠고, 아홉 살 때부터 작곡을 공부하던 그는 열두 살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러시아 귀족 가문이었던 그의 집안에 유난히 해군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졸업 후 경험한 3년간의 원양 항해 생활과 11년간 해군 군악대 지휘자로 활동한 독특한 경력과 관악기를 많이 쓰는 군대음악의 영향이 그를 근대 관현악법의 대가로 만든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모차르트가 유럽 각국을 순회하며 달리는 마차 안에서 수많은 교향곡을 작곡한 것처럼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원양 항해 기간에 자신의 교향곡 제1번을 함상에서 작곡하고 귀항 후 페테르그라드에서 연주하면서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그는 1908년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하기 전까지 자택에서 작곡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프로코피예프·스트라빈스키 같은 쟁쟁한 음악가들이 그의 제자다. 오늘날 피아노·바이올린·첼로나 관악기 독주곡으로 다양하게 편곡돼 연주되고 있는 왕벌의 비행은 1900년 작곡한 그의 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 중 제2막 제1장에서 바다를 건너 날아온 벌떼가 백조 주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청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황제 술탄 이야기 또는 술탄 황제 이야기로 불리는 이 오페라는 황제가 무언가에 술을 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술탄이라는 이름의 황제와 관련된 얘기다. 난파선을 탄 술탄 황제가 표류 끝에 도착한 악마의 섬에서 벌떼 공격을 받는 백조를 구출해 주고, 그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 둘이 결혼해 행복하게 잘살게 된다는 줄거리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내용이 비슷하다. 백조의 호수는 그 배경이 호수고 술탄 황제 이야기는 바다라는 점과 공주로 변하는 백조를 공격하는 괴물이 백조의 호수에서는 일명 ‘흑조’로 불리는 큰 새 종류이고 술탄 황제에서는 곤충인 왕벌떼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문의 041-551-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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