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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죽겠다는 사람, 어떻게 막아" 인식 바꾸자

중앙일보 2014.04.02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인생은 유희가 아니다. 자기의 의사만으로 그것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 한국은 톨스토이의 명언이 무색한 사회다. 자살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201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8.1명이다. OECD 평균의 2.3배다. 증가율도 1위다. 2000∼2010년에 100%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에 포르투갈·칠레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감소세를 보였다. ‘자살 대란’이 일어났지만 우리는 국가적 종합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죽겠다는 사람, 무슨 수로 막아’ 하는 안이한 생각이 오늘의 ‘자살 공화국’을 만들어냈다.



 자살 유형은 크게 의학적·사회적·철학적 자살로 나뉜다. 이 중 삶에 대한 궁극적인 회의에서 비롯되는 철학적 자살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지 있었다. 예방·관리하기 어려운 자살 유형이다. 반면 고립감·스트레스·충격 등이 반복되면서 벌어지는 사회적 자살이나, 육체적·정신적 질병 때문에 일어나는 의학적 자살은 사회 분위기와 정책의지에 따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지금까지 자살 원인·유형을 면밀하게 조사한 경우가 드물었다. 그렇다 보니 적확한 대책도 세우기 어려웠다. 1일 보건복지부가 자살 시도자 면접조사와 심리적 부검, 국민 인식조사를 토대로 대규모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은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살 시도자 1359명의 시도 이유를 조사한 결과 ‘우울감 등 정신과적 증상’이 37.9%로 가장 많았다. ‘대인관계 스트레스’(31.2%)가 뒤를 이었고 ‘신체적 질병’(5.7%)도 적지 않았다. 의학적·사회적 자살 유형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흔히 자살연구자는 교통사고와 자살을 비교한다. 1990년 초반, 10만 명당 40여 명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차가 늘고 차가 늘면 교통사고 사망이 늘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교통지옥을 만들었다. 이후 교통인프라를 정비하고 법규를 강화하며 대대적인 교통의식 선진화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지금은 10만 명당 10명대로 떨어졌다. 의학적·사회적 자살 역시 확고한 의지만 있으면 확 줄일 수 있음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인식이 아직 강하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는 정책방향도 제시해준다. 자살 시도 인구의 자살 사망률은 10만 명당 700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일반 인구의 25배나 됐다. 단기적으로는 자살 고위험군을 집중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비극적 선택을 의미 있게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자살 시도자에게 정기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해 큰 효과를 보기도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우울증 등이 정신이상이 아니라 뇌 질환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복지·안전 망을 촘촘히 짜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얼마 전 국회 입법조사처는 매년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최대 3조800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냈다. 막대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죽겠다는 사람, 수를 쓰면 막을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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