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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4800만 시의원 "2년간 만든 조례 부끄럽게도 1건뿐"

중앙일보 2014.03.31 00:56 종합 1면 지면보기
“부끄럽다. 내가 주도해 만든 조례가 딱 1건뿐이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로 시의회에 들어가 남들보다 의원으로 일한 기간이 짧긴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2년5개월에 1건이라는 건…. 더 만들려 노력했는데 다른 의원들이 동의해주지 않아 못 만든 조례가 있긴 하다. 사실 노는 시의원들이 꽤 된다. 어디서 뭐 하는지 안 보이다가 표결할 때만 나타난다. 당선되자마자 일하기보다 ‘다음엔 어떻게 공천받을까’만 생각하는 것 같다. 4776만원 연봉(의정비) 받는 게 민망할 정도다.”


[연중기획] 내 삶 바꾸는 지방자치
기초의회 의정비 1년 1009억
1인당 조례는 연간 0.8건 … 노는 의원 선거로 솎아내야

 경기도 성남시의회 권락용(32·무소속) 의원이 털어놓은 얘기다. ‘풀뿌리 중의 풀뿌리’라는 대한민국 시·군·구 의원(기초의원)의 현실이 이렇다. 일 안 하는 의원들이 상당수다. 기초의원들이 만드는 법규인 ‘조례’ 제정·개정 실적이 이를 보여준다.



전국 227개 기초의회 2876명 의원들은 임기가 시작된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조례 총 8261건을 만들거나 고쳤다. 3년6개월간 1인 평균 2.9건으로, 1년에 0.8건꼴이다. 본지가 227개 기초의회의 조례 제·개정 건수를 전부 조사한 결과다. 1인당 평균 3510만원씩, 세금에서 한 해에 총 1009억원 의정비를 지급받는 기초의원들이 일한 실적이 이렇다. 인천대 김재영(55·행정학) 교수는 “조례 제정 같은 입법활동은 시·군·구 의원이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이를 평균 1년에 0.8건밖에 만들지 않았다는 건 기초적인 의무도 지키지 않는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조례엔 규제도 있지만 주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내용이 많다. 1인당 연평균 조례 제·개정 3.1건으로 전국 1위를 기록한 경기도 오산시의회가 2012년 19세대 이상 낡은 연립주택·빌라 수리를 우선 지원하는 조례를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이처럼 조례는 주민 삶과 직결됐는데도 손 놓고 있는 기초의원들이 많다. 경남 남해군 의원 7명은 조사 대상 기간 중 만든 조례가 4건뿐이었다. 1인당 연평균 0.1건으로 227개 기초의회 가운데 가장 저조하다. 그나마 4개 중 1개는 의원들이 ‘업무 중 사망 또는 장애 시’에 보상금을 주던 것을 ‘상해를 입었을 때’까지로 범위를 넓힌 ‘제 밥그릇 챙기기’였다.



 단 한 건 실적이 없는 의원들도 있다. 전북 전주시의회 지방선거에 옛 민주당으로 나와 당선된 최찬욱(64)·김명지(51) 의원은 2006~2010년 임기 때부터 최근까지 거의 8년간 조례를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최 의원은 “나는 지역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조례 발의 기회는 후배들에게 주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제대로 일 안 해도 재선·3선 … 국회의원이 공천권 쥔 탓"



때론 민생은 제쳐놓고 정파 싸움에 골몰한다. 다음은 권락용 의원의 고백이다.



 “2012년 말에 이듬해 성남시 예산안을 처리하게 됐다. 나는 새누리당이었다. 민주당 소속인 시장과 사사건건 대립하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예산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2013년 초가 됐는데도 예산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돈을 지급할 근거가 없어 한동안 청소 같은 공공근로 일자리가 사라졌다. 실직자와 노인들은 수입이 끊겨 생활고를 겪었다. 그날 벌어 그날 먹는 분들인데…. 그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다음에 두 차례 당론을 따르지 않고 소신 투표를 했다. 결국 지난 2월 제명됐다. 후회는 없다. ” 권 의원은 본지 취재진이 만난 90여 명의 의원 중 이름과 얼굴을 신문에 밝히고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기초의회를 비판하겠다고 나선 유일한 인물이다.



 상당수 기초의원이 제 할 일을 다 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래도 재선·3선이 된다. 특히 국회의원이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는 제도 아래서 그랬다. 기초의원들이 어떻게 일했는지 속속들이 알 길 없는 유권자들이 정당만 보고 선택하다 보니 노는 의원들이 시·군·구 의회에 재입성한 것이다.



창원대 이호영(55·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 대표) 교수는 “시·군·구 의원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알림으로써 유권자들이 일 않는 의원들을 선거에서 솎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장대석·황선윤·홍권삼·김방현·신진호·최모란·윤호진·안효성 기자



◆어떻게 조사했나 조례 제정·개정 실적은 본지가 227개 시·군·구를 조사해 파악했다.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3년6개월간 만들거나 고친 8261건을 의원 숫자인 2876명으로 나눠 1인 평균 2.9건, 연간 0.8건이란 수치를 얻었다. 공동발의했더라도 대표발의자 1인이 만든 것으로 간주했다. 현실적으로 대표발의자가 조례안을 만들고 공동발의자는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가 많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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