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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영혼

중앙선데이 2014.03.29 03:51 368호 28면 지면보기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외삼촌의 친구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로부터 문학 지도를 받았다. 온전히 창작에 전념한 기간은 10년에 불과하지만 300편 이상의 단편소설과 6편의 장편소설, 시집과 기행문까지 남겼다. 정신착란 증세로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요즘도 가끔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읽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역시 모파상은 완벽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 다들 읽어봤을 ‘비곗덩어리’나 ‘목걸이’도 그렇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인’은 열 쪽도 채 안 되는데도 읽다 보면 가슴이 뜨끔해지기도 하고 다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후우 하고 가벼운 한숨을 내뱉게 된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56>『여자의 일생』과 기 드 모파상

서머싯 몸의 말처럼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하자면 모파상은 단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일 것이다. 구성의 치밀함과 극적인 반전은 물론이고 인간 본성을 꿰뚫어보는 냉정한 시선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분량은 짧지만 남는 여운은 무척 길다.

그래도 역시 소설은 장편이라야 읽을 맛이 난다. 때로는 끼니도 거른 채 밤을 새워가며 읽으려면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은 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를 리 없었던 모파상이 처음 써낸 장편소설이 『여자의 일생(Une Vie)』이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고 펑펑 눈물을 흘린 독자들 참 많았을 텐데, 어쩌면 모파상이 주인공 잔의 불행한 삶을 냉혹하리만큼 객관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이 장면을 보자. 그 많던 재산을 다 잃고 아들로부터도 버림받은 잔은 입버릇처럼 되풀이한다. “난 참 운이 없는 사람이야.” 그러자 하녀 로잘리가 외친다. “그럼 만약 마님이 빵을 얻기 위해 일해야 한다면, 하루의 품팔이를 위해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그들은 비참하게 죽습니다.”

모파상은 이 가슴 아픈 운명의 여인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게 바로 우리 삶의 모습이고 살아가는 현실이니까. 그러면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여자의 일생』은 열일곱 살 소녀 잔이 행복을 꿈꾸며 수도원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부유한 남작인 아버지는 그녀를 위해 노르망디 바닷가 마을에 별장을 마련해 준다. 곧이어 사랑하는 남자도 나타난다. 그녀는 이 젊고 매력적인 자작과 결혼하지만 그녀에게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과 시련이 닥친다. 남편의 배신과 죽음, 유산과 조산, 아들의 타락과 부모의 죽음, 늙어서야 맛보게 된 가난.

잔은 어느 날 아침 다락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해묵은 달력이 가득 든 상자를 연다. 그녀는 마치 잃어버렸던 세월을 다시 찾아낸 듯한 감동에 사로잡힌다. “수도원을 떠나던 날 아침 자신이 지운 날짜들이 있는 그 달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울었다. 늙은 여인의 가엾고도 애절한 느린 울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내온 날을 하루하루 돌이켜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잔은 노랗게 변색한 달력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몇 시간을 보낸다. “이 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지?” 머나먼 추억들,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린 인생, 이제 그녀 앞에는 우울하고 고독한 몇 해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별장을 마지막으로 둘러본다. 한쪽 벽에는 옛날 어린 아들의 키를 재며 아버지와 이모, 그리고 자신이 표시했던 눈금이 남아 있다. 아들은 그때 벽에 작은 이마를 바싹 갖다 대고 그녀 앞에 서 있었고, 남작은 이렇게 외쳤다. “잔아, 얘가 여섯 주일 동안 1센티미터나 자랐구나.”

새집으로 돌아오니 연락이 끊겼던 아들한테서 편지가 와 있다. 얼굴도 모르는 며느리가 딸을 낳다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로잘리가 갓난아이를 데리러 파리로 가고, 사흘 뒤 잔은 역으로 나가 그들을 맞는다. 로잘리가 천에 싸여 보이지 않는 갓난아이를 내밀자 그녀는 기계적으로 품에 안는다.

“갑자기 부드러운 온기가, 살아 있는 체온이 그녀의 옷을 뚫고 다리를 통해 살까지 스며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는 갓난애의 체온이었다. 그러자 끝없는 감동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갑자기 아직까지 보지 못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내 자식의 딸이다.”

갓난아이가 강한 빛을 받아 입을 오물거리며 파란 눈을 뜨자 잔은 아이를 두 팔로 들어올려 미친 듯이 입을 맞춘다. 홍수 같은 키스를 퍼붓는 그녀에게 로잘리는 그러다간 애를 울리겠다면서도 흡족한 목소리로 덧붙인다. “그래요,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지요.”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잔은 또 이 갓난아이에게 남은 인생을 바칠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그것이 그녀에게 무슨 위안이 될까? 꿈 많던 소녀는 사라지고 이제 초라하게 늙어버린 보잘것없는 여인만 남았는데. 게다가 방탕하기만 한 아들처럼 어쩌면 이 어린 손녀가 그녀에게 마지막 환멸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데. 그게 알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고 우리 삶의 허망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건 아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영혼, 그녀는 이것으로 충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여자의 일생이니까.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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