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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표 차로 집권한 대처 … 그때 판친 '흑마술' 묘사했다

중앙일보 2014.03.29 01:06 종합 16면 지면보기
1987년 영국 가디언지가 ‘아기의 얼굴을 한 청부살인업자’라고 묘사했을 정도로 정치적 수완이 좋은 영국 상원의원 마이클 돕스(66) 경. 1989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0여 권의 소설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사진 마이클 돕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노 정객이 토로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이하 ‘하우스’)가 그에 상응하는 말이겠다. 카드로 어렵사리 세우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결국엔 무너져 내릴 집 말이다.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 원작자 돕스



 지난해부터 미국 인터넷 콘텐트 유통업체인 넷플릭스를 통해 상영된 정치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우스’ 시즌 3가 나오길 고대하고 중국 정치인들이 탐닉한다는 바로 그 드라마다.



 요즘 인기몰이 중이지만 원작이 나온 지는 좀 됐다. ‘아기의 얼굴을 한 청부살인업자’로 불릴 정도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핵심 중 핵심으로 활동하다 밀려난 마이클 돕스 경이 대처와의 결별 직후인 1989년부터 94년까지 ‘하우스’ 3부작을 발표했다. 정치의 빛도 어둠도 제대로 맛본 이의 체험기였다. 90년부터 영국 BBC 드라마로 방영됐으니 이번 ‘하우스’는 20여 년 만의 리바이벌인 셈이다. 영국판에서 온갖 음모와 술수의 마키아벨리스트인 프랜시스 어커스트가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면 미국판의 프랭크 언더우드는 대통령직을 꿰찬다. 영국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하는 돕스 경을 만나 소회를 물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2의 포스터. 50개 주를 상징하는 별이 사라진 채 거꾸로 그려진 미국 국기는 권력욕 가득한 정치인들 때문에 국가가 위험에 처했음을 암시한다.
 - 미국판도 엄청난 인기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쓴 건 우연이었다. 책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산을 오르듯, 그저 어느 정도까지 오를 수 있나 보자는 심경으로 썼다. 소설 발간 이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고, 결국 전업작가가 됐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고? 나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다.”



 - 대처와 헤어진 이후 소설을 쓰게 됐다고 들었다.



 “수년간 대처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틀어졌는데 대처가 나를 굉장히 불공정하게 대했다고 생각했다. 불만을 제기하진 않았지만 큰 상처가 남았다. 그래도 난 대처가 나라를 바꾸는 걸 지켜봤다. 70년대 영국은 통치 불능의 나라였다. 대처는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못 해낸 일을 해냈다. 내 시각에서 대처는 평화기 총리 중엔 최고다. 그가 나를 엄청 열 받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책을 쓰게 됐으니 오히려 덕을 봤다.”



 - 언더우드 캐릭터에 영감을 준 이는.



 “대처가 야당 당수이던 때 정치는 혼란 그 자체였다. 한두 표 차이로 정부가 언제든 무너질 것이라고 여겼던, 영국 정치사에서도 기이했던 시기였다. 여야 간 전쟁이었다. 기발한 술책(extraordinary tactics)은 물론이고 (악의적·이기적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힘을 동원하는) 흑마술(dark arts)도 동원됐다. 결국 한 표 차이로 노동당 정부가 무너졌고 대처가 집권했다. 당시엔 병상에 있다가도 투표하러 나왔다. 당시 영국 정계에선 흑마술이 횡행했다. 그게 당신이 드라마에서 보는 바다. 그러나 ‘하우스’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다. 내가 정치 동료들에게 꼭 하는 얘기다.”



 - 결국 대처가 언더우드란 말인가.



 “아니다. 여럿으로부터 조금씩 취했다. 이름을 밝힐 순 없다.”



런던 한국문화원에서의 인터뷰 중 마이클 돕스 경이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화면 사진은 주연 케빈 스페이시. [고정애 런던특파원]
 - 정치인은 마키아벨리스트여야 하나.



 “아주 고귀한 사람들, 절대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치인으로서 내 일의 대부분은 따분한 것들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의도적으로 어둡고 고통받는 부분에, 악당과 유혹 그리고 정치게임에 주목했다. 의도적으로 사악했던 거다. 단언컨대 (극이 전개될수록) 더 사악해질 거다.”



 -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윙’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하우스’는 늑대인간들의 ‘웨스트윙’이랄 수 있다. ‘웨스트윙’이 이상주의적이며 선한 사람들의 얘기였다면 ‘하우스’는 사악한 얘기다. 정치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한다. 집필 당시 영국엔 엄청난 정치 냉소주의가 있었다. 정권이 영리하고 교묘하면서도 사기꾼 같다고들 느꼈다. ‘하우스’는 그걸 양분 삼았다. 반면 ‘웨스트윙’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대의 산물이다. 논쟁적 우파 대통령의 시기에 나온 좌파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이상적 대통령의 전형인 주인공 제드 바틀렛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이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좌파 대통령으로 이상주의적이다. 그러니 이젠 언더우드 같은 이가 나와 헤집고 다니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언더우드는 적어도 원하는 바를 알고 어떻게 얻는지도 아니까.”



 - 이 시대가 언더우드를 필요로 한다고 보나.



 “내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이건 엔터테인먼트지 교범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 질문에 답한다면 정치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네 차례니까 네가 해. 내 차례엔 내가 할게’가 아니다. 물론 타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타협하느냐도 중요하다. 정작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는데도 타협해야 하는가. 성공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야망과 욕망이 있어야 한다. 어느 위대한 정치인도 옆에 있기 편한 사람은 없었다. 대처도 처칠도 안 그랬다. 진정 변화를 만들어 낼 이라면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다. 그건 필연이다.”



 - 드라마 얘기를 해 보자. 영·미판을 비교해 달라.



 “케빈 스페이시가 연기하는 언더우드가 훨씬 더 어둡고 사악하다. 사람들이 종종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묻는다. 올림픽 금메달 두 개를 딴 격인데 내가 왜 하나를 골라야 하나. 절대 어느 쪽이 낫다는 답변을 못 들을 것이다.”



 - 스페이시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고 답한 인터뷰를 봤다.



 “정말 비범한 개인이다. 진지한 연극인이면서 동시에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다(스페이시는 2004년 영국의 전통극장 올드빅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폐쇄 직전의 극장을 되살려냈다). 그리고 남의 흉내를 정말 잘 낸다. 한 번은 유명 방송인 조니 카슨인 척하더라. 다소 거만하더라도 봐줄 만한데 거만하지도 않다.”



 - 언더우드의 부인 역 로빈 라이트도 인상적이다.



 “언더우드만큼이나 사악하다. 실제론 달콤하고 사랑스럽지만. 지금 골든글로브상 하나 받았지만 시리즈가 끝날 무렵엔 여러 개로 늘어나 있을 것이다.”



 - 『하우스 오브 카드』를 집필한 지 30년 가까이 흘렀다. 정치에 대한 시각은 여전한가.



 “근래 이슈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과거만큼 선명하지 않다. 요즘 영국 정치인들은 이데올로기의 전사라기보다는 매니저 같다. 대학 때부터 정치를 해서 정계에 대해선 너무나 잘 알지만 나머지 세계에 대해선 잘 모른다. 과거가 그리울 때가 있다.”



 - 장차 정치하려는 이에게 조언한다면.



 “정치하기에 좋은 시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정치에서 지금 다루는 게 수십 년 영향을 미친다. 정치가 잘못되면 우리 아이들이 더 어렵고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결국 정치가 중요하단 얘기인데 자녀에게도 권하겠나.



 “18세 아들이 절망적일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다. 잘못된 축구팀을 응원할 뿐 아니라 잘못된 정당(노동당 지칭)까지 지지한다. 내 아이가 정치를 안 했으면 하는 건 매우 어렵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안온한 삶을 원한다면 비즈니스에 힘을 쏟는 게 낫다. 정치는 ‘큰돈도 편안한 삶도 추구하지 않겠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어느 현자가 ‘모든 정치가의 경력은 결국엔 실패자로 귀결된다’고 했다. 전적으로 옳은지 모르겠으나 분명 모든 정치가는 반드시 엄청난 실패와 낙담을 겪게 돼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안온한 삶을 원한다면 정치하지 말라.”



런던=고정애 특파원



“민주주의 별수 없네” … ‘하우스’에 빠진 중국인들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됐어.”



 중국이 ‘하우스 오브 카드(이하 ‘하우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꼬집은 이 대사에 함축돼 있다. “내 이름 찍힌 투표지 한 장 없이 대통령 코앞까지 와버렸군.” 부통령 취임선서 도중 케빈 스페이시의 방백이다.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여겨지던 미국 정치에 대한 냉소다.



 중동 시민혁명을 일컫는 ‘아랍의 봄’은 고장 났고, 오렌지혁명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만신창이가 됐다. 중국 관변 학자들은 민주주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며 ‘중국식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외친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달 초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부조리와 부패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 중국인들의 통념을 ‘하우스’가 확인시켜 줬다”고 지적했다.



 중국 포털사이트 써우후왕(搜狐網)을 통해 미국과 동시에 독점 공개된 ‘하우스’ 시즌2는 40여 일 만에 1편 1722만을 포함해 총 5368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하우스’ 시즌1에서 케빈 스페이시(프랜시스 언더우드 역)는 미 하원 다수당의 원내총무(Whip)로 활약했다. 그의 가차없는 실용주의는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하원 때문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힌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을 팬으로 만들었다.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두르는 스페이시의 모습에 8513만 공산당원의 군기반장을 자임하는 왕치산(王岐山) 중국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도 매료됐다.



 중국인들은 ‘하우스’에서 권모술수 가득한 중난하이(中南海·중국의 권부)를 떠올린다. “중국 정부에 대한 이런 종류의 드라마는 결코 심의를 통과할 수 없다.” 베이징 시사회에 참석한 중국 팬이 말하는 ‘하우스’의 흥행 이유다. 신경보는 “일반인의 눈에 권력의 운용은 신비로운 소수의 게임”이라며 “대중의 이런 심리를 만족시킨 것이 ‘하우스’의 인기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하우스’는 최고 레벨의 권력에 대한 탐구다. 오늘날 그 이야기를 중국을 제외하곤 할 수 없다.” ‘하우스’의 전속작가 케네스 린의 말처럼 ‘하우스’ 시즌2에는 ‘중국’이 넘친다. 한 병에 4만 달러(약 4300만원)를 호가하는 1926년산 ‘맥켈란’ 위스키를 즐기는 중국 혁명 원로의 3세 샌더 펑, 카지노를 통해 샌더 펑의 돈세탁을 돕는 미국 대통령의 후견인이 등장한다. “중국을 상대할 땐 힘을 보여줘야 우릴 존중할 것”이라는 백악관 각료 회의의 발언은 마치 미국의 대중 외교 매뉴얼을 보는 듯하다.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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