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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4월의 주제 - '떠들썩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2014.03.29 00:13 종합 24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4월 주제는 ‘떠들썩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세상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살피는 데



도움을 줄만한 책 세 권을 소개합니다. 당연하게 여겨지곤 하는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 삶을 진정 풍성하게 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일러스트 강일구]


디지털 사회의 함정 … 정보공개가 다는 아니다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35쪽

1만2000원




『피로사회』로 2012년 한국 출판계에 화제가 됐던 독일 베를린예술대 한병철 교수의 신작이다. 독일에서 2012~2013년 나온 『투명사회』와 『무리 속에서』를 묶어 국내에선 한 권으로 펴냈다.



 한 교수는 독일 사회에서 각광받는 철학자다. 고전 철학서를 해석하기보다 동시대 이슈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독일 신문에 자주 기고를 하기도 한다. 그의 글은 현실 비평에서 시작한다. 그의 책을 이해하려면 독일 사회의 현실적 맥락을 짚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나온 2012년 독일에선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거셌다. 정치인의 비리와 재계의 탐욕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낱낱이 까발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독일 주간지 ‘차이트(Zeit)’에 글을 실었다. ‘죽은 것만이 투명하다’는 제목의 기고였다. 투명성이 신뢰를 낳을 것이라는 주장을 비판했다. 불신 사회이기 때문에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많아진다고 주장했다. 인과관계를 잘못 판단했다는 그의 지적이 독일 사회에 던진 파장은 적지 않았다.



 투명사회는 ‘모든 것을 즉각 공개할 것’을 명령한다. 이같은 투명성이 정치를 잘못된 길로 이끌 것으로 저자는 파악한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모든 것이 즉각 공개된다면, 정치는 불가피하게 호흡이 짧아지고 즉흥적 성격을 띠게 된다. 정치는 잡담처럼 얄팍해진다.…(중략) 미래지향적 비전은 점점 더 희소해진다. 천천히 무르익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배려는 점점 더 줄어든다.”



 저자는 투명성이 파괴할 삶의 여러 요소들을 두루 살핀다. 정치를 지나 문화를 훑고 소통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의 통찰력은 ‘디지털 사회’를 살필 때 큰 힘을 발휘한다. 특히 스스로를 발가벗기듯 드러내려고 경쟁하는 요즘 사람들을 ‘현대적 파놉티콘(panopticon·모든 것을 감시받는 원형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다고 분석한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기에 흥미롭게 읽힌다. 특히 디지털 매체가 낳은 부작용인 ‘악플(shitstorm)’에 대한 사유가 날카롭다.



 악플을 생산하는 ‘디지털 무리’는 그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군중과 다르다. 군중은 하나의 ‘정신’을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권력을 위협한다. 하지만 디지털 무리는 개별적 주장만 있기에 정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악플은 맥없이 스러지는 소음에 불과하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한때 유행했던 ‘인터넷 민주주의’의 장밋빛 이상과 배치된다. 현대 사회의 이상으로 여겨졌던 현상들이 초래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를 얘기한다. 세상이 제공하는 낙관적 전망에 기대지 말고 제 머리로 생각하라는 경고로 읽힌다.



이정봉 기자



일본 인기만화가의 권유

"하루라도 일정 없는 날을 …"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이봄

216쪽, 1만2000원




마스다 미리는 일상 만화가다. 그가 그리는 만화 속엔 예쁜 주인공이 나와 신데렐라가 되는 공상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늘 짧게 그려내는데, 울림은 길다. 저자는 독신 여성 수짱이 주인공인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와 같은 ‘수짱 시리즈’에서 30대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해 인기를 끌었다. ‘일본 여성의 정신적 지주’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최근작 『밤하늘 아래』의 주인공은 우주 속에서 살고 있는 작디 작은 인간이다. 에피소드 중 하나를 들면, 늦은 밤 직장맘은 헐레벌떡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별이 총총 뜬 밤 아이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묻는다.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어떡해?” 엄마는 “뛰어서 도망쳐”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언제든 달아날 때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돼. 살아 있는 게 중요하니까.”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면서도 콕 짚어 말하는 힘이 있는 그의 하루가 궁금했다. 에세이집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를 통해 본 저자의 하루는 만화와 빼닮았다. 일을 위한 미팅을 하고, 절전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구와 심야 마트 쇼핑을 하고,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고…. 그 누군가의 삶에 덮어씌운다 해도 놀라울 게 없는 평이한 하루. 그런데도 그의 만화처럼 그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건 ‘생각의 힘’에 있었다.



 저자는 생각도 많고, 질문도 많다. 혼자 생각하는 일을 중요시해서 달력에 미리 ‘일정을 넣지 않는 날’을 잡아 놓는다. 그러고선 “시간이란 것은 거침없이 흘러가지만, 그러나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며 편안해 한다. 마흔을 넘긴 독신 여성으로서 사는 것을 이야기할 때도 솔직하다. “이제 누구도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지 않지만, 어른이 되어도 장래는 있다”며 친구와 불꽃놀이 대회 일정을 확인하는가 하면, 백화점 지하에서 오징어 튀김을 사다가 밀려든 외로움에 대해 젊은이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무력감때문이라고 선뜻 정의한다.



 저자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성격 중에서도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은 이렇다.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내 전부가 엉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믿음이 있기에 쓰러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저자의 만화가 현대인을 위한 힐링만화라 불리게 된 건 이런 믿음 덕분일까. 저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이웃이 건넨 ‘애정이 담긴 말 한마디’를 떠올리며 “나는 괜찮다!”고 하는 걸 보니 덩달아 “나도 괜찮다”는 말이 하고 싶어진다.



한은화 기자



군자의 지혜, 잔잔한 물에서 달을 볼 수 있으니



나를 지켜낸다는 것

팡차오후이 지음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325쪽

1만2000원




현대인은 분주함 그 자체다. 학생은 좋은 성적을 얻으려, 직장인은 돈을 버느라, 관리는 승진을 위해 정신없이 달린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인지, 아니면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이처럼 ‘바쁘다’는 핑계 속에 소리없이 실종된 내 인생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마음 공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그 마음 공부와 관련해 저자는 수신(修身)에 대한 유가(儒家)의 아홉 가지 덕목을 소개한다. 고요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 보는 수정(守靜), 마음을 살펴 하늘의 뜻을 찾는 존양(存養), 패러다임을 깨고 한계를 허무는 자성(自省), 고난의 압박에서 자신을 지키는 정성(定性) 등. 말은 수신(修身)이지만 내용은 마음을 닦는 수심(修心)이다.



 책은 우선 마음의 평정을 지켜야 한다고 권한다. 왜? ‘고요한 뒤에야 능히 안정이 되며(靜而後能安) 안정된 뒤에야 능히 생각할 수 있고(安而後能慮) 깊이 사색한 뒤에야 능히 얻을 수 있다(慮而後能得)’는 것이다. 잔잔한 물에서만 반짝이는 달과 별을 볼 수 있듯이 마음이 평온해야 인생의 도리를 깨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채근담에도 ‘마음을 마무리하면 일은 저절로 마무리된다(了心自了事). 뿌리를 뽑으면 풀이 나지 않는 것과 같다(猶根拔而草不生)’는 말이 나온다. 모든 게 마음 먹기에 달렸다. 그래서 중국의 사대부가 인생의 이상으로 추구한 경지는 ‘외부의 일 때문에 기뻐하지도 않으며(不以物喜) 자신 때문에 슬퍼하지도 않는다(不以己悲)’였다.



 ‘성긴 대숲에 바람이 불어오되 바람이 지나가면 대숲은 소리를 머금지 아니하고(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차가운 연못 위로 기러기 날아가되 기러기 지나가면 연못은 그림자를 붙들지 않는다(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그와 같이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일고 일이 끝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故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 채근담에 나오는 이 말은 공(功)을 세워 이름(名)을 떨치기에 급급한 현대인에게 어떻게 ‘세상을 벗어난 마음(出世之心)’으로 ‘세상에 얽매인 일(入世之事)’을 할 것인가의 도리를 일러준다.



 이 책의 강점은 전통적인 유학의 가르침이 서구 철학·사회학·심리학·인류학 등과 버무려진 채 일상의 예를 통해 쉽게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먼저 서구 철학을 공부한 뒤 나중에 유학으로 돌아온 저자의 지적(知的) 경로와 무관치 않다. 중국인은 옥(玉)을 좋아한다. 그래서 옥을 군자에 비유하곤 한다. 옥은 오래될수록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1980년대 중국을 휩쓴 서구화 바람을 타고 서양 철학을 공부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정신적 안식처를 중국의 전통적인 유학에서 찾았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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