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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갖고 싶더라" 각광받는 연예인 이름 가방

중앙일보 2014.03.28 00:02 Week& 1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 송혜영


“○○○에서 나온 ○○○ 가방 있잖아. 난 요즘 그게 눈에 띄더라.” 가방에 관심 많은 여성이라면 해봤음직한, 이런 배우자 혹은 애인을 둔 남성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대사다. 꼭 하나 가져야 할 ‘잇 백(it bag)’ 시대가 저물었다는 건 최근 몇 년 새 수차례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새 가방은 쏟아져 나오고 각자의 개성은 뚜렷해져서 어느 하나가 유행을 독점하지 못해 생긴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브랜드에서 나온 어떤 가방은 여전히 이름이 회자되며 팔려나간다. 주변에서 이름을 자주 들으니 ‘잇 백’인 것 같다는 얘기들도 한다. 귓가를 맴도는 가방 이름, 그 마케팅의 비밀을 알아봤다.

가방 작명법의 비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대에는 패션·뷰티 홍보대행사가 모여 있다. 20·30대 여성 중에서도 패션과 유행 동향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102명의 여성에게 ‘돈이 있다면 지금 당장 사고 싶은 가방이 뭐냐’고 물었다. 사전 정보를 주지 않고 응답 전에 인터넷 등을 통해 조사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가방을 물었더니 여성 102명 중 87명이 특정 브랜드와 가방 명칭을 댔다. 나머지 15명은 ‘가방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그 가방엔 따로 이름이 없다’고 했다. 패션에 민감한 여성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긴 해도 브랜드 이름 말고 가방 이름까지 줄줄 꿰는 여성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렇듯 가방 이름을 되뇌다 보면 ‘언젠간 갖고 말겠다’는 욕망도 커지는 법. 그러다 보니 업체들은 가방 이름 짓기에 공을 들인다.



최근 각광받는 가방 작명법은 연예인 이름 활용이다.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를 사는 소비자들이 많아서 생긴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바람몰이를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익명을 원한 온라인 홍보업체 관계자는 “업체에서 정한 가방 이름이 있더라도 일단 어떤 연예인이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PPL이나 협찬을 통해 무수히 노출되더라도 누구 덕분에 확 떴느냐가 기준”이라고 말했다. A·B·C 등 연예인 3명이 들고 나왔다 해도 B가 들었을 때 떴다면 가방 이름은 순식간에 ‘B 백’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작명법 첫 단계는 눈 밝은 시청자 한 명이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 글을 올리는 걸 주시하는 것이다. ‘오늘 드라마 봤는데 ○○○이 든 가방은 어느 브랜드 것인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오기 무섭게 답을 달아야 한다. 답글을 달고 나선 관련 블로그 글 등을 무한 반복해 퍼 나르는 게 다음 순서다. 이 관계자는 “가끔은 반대 순서로 일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억지로 이렇게 만들 순 없다”고 고백했다.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금세 알아차리고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란 게 이유다. 톱스타가 출연할 드라마에 가방을 노출할 계획이 확정되면 드라마 방영과 동시에 관련 상품 정보가 담긴 글을 게시한다. 이게 온라인 전문 홍보업체가 쓰는 일반적 방법이다. 하지만 노골적인 홍보로 보일 경우 부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리기도 하는데 이래선 홍보 효과가 반감된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특정 연예인을 모델로 섭외하고 가방 디자인에 참여시키는 것도 가방 이름을 둘러싼 전쟁의 한 단면이다. 빈폴은 지난해까지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배우 김민희를 모델 겸 디자이너로 초빙해 ‘김민희 백’을 선보였고, 헤지스는 올해 그룹 걸스데이 멤버 이름을 붙인 가방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 대중 브랜드 가방 이름에만 연예인 이름이 각광받는 건 아니다. 해외 유명 브랜드 가방에도 지명도 있는 인물 이름이 들어간다. 이탈리아 브랜드 토즈는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들었던 가방에 그의 이름 첫 글자 ‘D’를 따서 ‘디백’이라 명명했다.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의 대표 가방으로 여겨지는 ‘버킨’이나 ‘켈리’도 유명인 이름에서 유래한 예다. 버킨은 가수 제인 버킨, 켈리는 배우 그레이스 켈리와의 인연으로 탄생했다.



유명인 이름이 가방에 들어 있는 걸 소비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해외 유명 브랜드 가방보다는 그리 비싸지 않은 한국 브랜드 가방을 주로 산다”는 직장인 이명희(29)씨는 “한 매장에 들어서면 수십 종류의 가방이 있는데 아무래도 연예인 이름으로 불리며 귀에 익은 걸 찾게 된다. 디자인도 익숙해 고르기 편하다”고 했다. 반면 명품 가방 애호가라는 서주연(40)씨는 “가방 이름이 뭐든 간에 원하는 모양이나 색상·재질이기만 하면 신상품을 구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방 이름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명 배우 이름을 빌려 가방을 출시했던 한 업체 관계자는 “얼마전까진 연예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가방 이름을 붙였다. 단지 유명인이라 이름을 따왔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단순히 이름만으로 장사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처럼 이름에 스토리까지 가미한 가방을 기획하려면 품이 많이 든다. 요즘은 이런 시도보다 당장은 수많은 브랜드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 사이에서 어떻게든 이름만이라도 살려보려 애를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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