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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해요, 스파이더맨 안 부럽죠

중앙일보 2014.03.28 00:02 Week& 6면 지면보기
도전, 암벽등반 ! 기자가 선운산 할매바위 `승진축하2`길에 도전하고 있다.


아웃도어스쿨 아홉 번째 수업은 암벽 등반이다. 남녀 각 5명 모두 10명의 초보자가 겁도 없이 전북 고창 선운산 암벽을 올랐다. 선운산은 주말이면 전국의 고수가 모여드는 암벽 등반의 메카다. 이론 교육만 받고 곧바로 실전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손정준(48·네파 홍보대사) 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년 전 국내 최초로 설악산 적벽을 자유등반으로 올랐으며 매년 50차례 선운산에서 암벽 개인 강습을 하는 고수다.

중앙일보·네파 공동기획 | 아웃도어스쿨 (9) 암벽 등반



암벽등반 체험자들과 손정준(맨 위) 강사가 고창 선운산 할매바위를 오르고 있다.
첫 도전에 초보자 코스는 모두 성공



지난 15일 오후 봄 햇살이 쏟아지는 고창 선운산 할매바위 앞에 암벽 등반 체험자 10명이 모였다. 호랑이바위로도 불리는 할매바위는 선운산을 찾는 클라이머에게 초급자용으로 통하는 바위다. 하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면 호랑이 얼굴처럼 웅장한 수직 벽을 포함해 각도가 90도 이상 되는 ‘오버행’도 있다. 물론 이번 아웃도어스쿨 참가자가 도전할 루트는 이보다 쉽다.



참가자들은 스무 개 이상의 할매바위 루트 중 맨 왼쪽에 있는 ‘승진축하’길에 줄을 맸다. 실내 암벽장에서 1~2주일 정도 훈련하면 도전해 볼 만한 루트다. 곧바로 암벽에 오르지는 않았다. 손 강사의 정신교육부터 시작됐다.



“암벽 등반은 멘털(mental) 스포츠입니다. 벽 아래 선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이미 루트의 성패가 결정 납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해외의 많은 암벽 등반 관련 논문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초보지만 오늘 여기를 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걸 하기 위해서 작정하고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그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손정준 네파 홍보대사.
체험자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어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론 교육을 마친 뒤 장비 교육에 들어갔다.



“벨트는 최대한 조여 매야 합니다. 느슨하면 추락할 때 몸의 중심을 잃어 사고가 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암벽화를 신고 헬멧을 쓰면 됩니다. 암벽화는 최대한 발이 조여지도록 신어야 해요. 손에 초크를 묻히면 바위 잡기가 조금 수월합니다.”



이제 실전이었다. ‘승진축하 1·2·3’에 각각 로프를 고정했다. 약 15m 높이의 바위 꼭대기에 박힌 쇠붙이에 줄을 통과시키고 줄 2개를 바위 아래로 내린 다음 줄 한 개는 등반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줄은 다른 사람이 잡아 주면서 등반하는 방식에 도전했다. ‘꼭대기에 줄을 건다’고 해서 톱 로프(Top Rope) 방식이라고 하며, 등반자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줄을 잡아 주는 사람을 ‘빌레이(Belay)’라고 한다.



2명이 한 조가 돼 등반과 빌레이를 번갈아 가며 도전했다. 가장 먼저 이현희(34)씨가 ‘승진축하 1’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벽을 제법 능수능란하게 올랐다. 알고 보니 이씨는 예전 실내 암벽장을 다닌 적이 있었다. 자연 벽은 처음이었는데, 수월하게 오르는 모습에 모두 놀랐다.



“암벽 등반에 소질이 있는 분입니다. 저런 분은 조금만 더 하면 좋은 클라이머가 될 수 있어요.”



손 강사의 칭찬에 다른 참가자들이 부러움 섞인 탄성을 자아냈다. 체험자들은 2~3시간에 걸쳐 3개 길을 차례로 올랐다. 끝까지 오른 사람도 있었고 중간에 내려온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1개 이상 루트는 완등했다. 놀라운 성적이었다. 손 강사를 비롯해 보조강사 4명이 빌레이를 보며 등반 루트를 상세히 가르쳐 준 덕분이었다. 손 강사의 칭찬이 이어졌다.



“제가 매년 수강생을 수백 명 가르치는데, 오늘 참가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고난도 코스에서는 모두 실패



아웃도어 매니어 사이에서는 ‘낚시는 추자도, 바위는 선운산’이란 말이 있다. 낚시꾼 중에 고수가 추자도에 모이고, 바위꾼 중 고수는 선운산으로 모인다는 말이다. 그중 선운산 ‘속살바위’와 ‘투구바위’는 고수 중의 고수가 모여 자웅을 겨루는 곳이다. 부드러운 석회암 바위 위로 수십 개의 고난도 루트가 있다.



이튿날 오전 우리는 속살바위 중 ‘백암 2’길에 줄을 걸었다. ‘5.10급’에 해당하는 바위다. ‘5.10급’은 미국식 암벽 난이도에 따른 표기로, 손 강사에 따르면 실내 암벽장에서 2~3개월 정도 운동해야 오를 수 있는 난이도다.



이날도 참가자들은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날 ‘5.8급’을 경험한 덕분에 자신감이 붙었다. 체험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정지은(22)씨도 “어제 등반하다 손발이 다 까졌는데 그래도 벽을 보니 얼른 올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날 등반에서 손 강사한테 칭찬을 받았던 이현희씨가 다시 맨 먼저 올랐다. ‘백암 2’ 초입은 책을 펼쳐 놓은 것처럼 벽이 맞붙어 있다. 이렇게 맞붙은 바위 사이의 틈새가 등반 루트가 된다. 이런 길을 보통 ‘크랙(Crack)’이라고 하는데, 손으로 당기기보다는 손발을 밀어서 올라가야 한다. 이현희씨가 낑낑대며 벽을 오르는 동안 손 강사 벽 아래에서 끊임없이 등반 자세와 테크닉을 주문했다.



“자세는 대각선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왼손으로 홀드(바위의 돌기나 홈)를 잡으면 오른발로 지지하고, 오른손으로 잡으면 왼발로 지지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손발로 이동해야 돼요.”



손 강사의 지시가 계속 이어졌다.



“손보다는 발로 밀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홀드를 잡으려는 쪽의 발을 밀어 올리면서 등반하는 겁니다. 손과 발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요. 그러면 팔이 굳어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합니다.”



“루트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을 크럭스(Crux)라고 해요. 우리말로는 고빗사위라고 합니다. 이럴 때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루트 파인딩(Route Finding)이라고 해요. 휴식을 취할 때는 다리를 넓게 벌리고 손을 뻗어서 쉬면 됩니다.”



손 강사의 주문이 쏟아질수록 벽에 붙은 학생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다. 완등 직전 오버행. ‘백암 2’ 길의 크럭스 지점에서 이씨가 멈췄다. 오버행은 온몸의 힘을 모아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홀드를 잡아채야 한다. 안타깝게도 손에 힘이 달리면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초보자치고는 잘한 편이었다. 나머지 9명이 차례로 ‘백암 2’길에 도전했지만 모두 중간지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기자도 도전했다. 직접 붙어 보니 벽에 붙은 홀드가 가시처럼 따가웠다. 단련되지 않은 손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올랐다. 손 강사의 지시에 귀 기울이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집중한 끝에 약 10m를 올랐다. 크럭스까지 갈 수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뿌듯했다. 등산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기자가 최고의 고수가 모인다는 선운산 속살바위를 체험한 것에 만족했다.



다른 참가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나래(27)씨는 “바위를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짜릿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소영(26)씨는 “평소 정말 배워 보고 싶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값진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며 즐거워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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