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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서광계(徐光啓)와 고구마

중앙일보 2014.03.27 13:28
상하이에서 쉬자후이(徐家匯)라는 번화가가 있다. 과거 프랑스 조계지의 영향으로 “라틴 쿼터”로도 불릴 정도로 유럽 프랑스 문화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곳은 명말(明末) 서광계의 시험농장으로 한 때 고구마 밭이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하이 출신의 서광계(1562-1633)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 많은 신동이란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이태리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뀐다. 박학다식하고 예절바른 서양인임에도 중국어가 능통한 마테오 신부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 중국이외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는 서양의 과학 지식을 흡수하기 위해 41세의 나이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서광계는 마테오 신부와 함께 유클리드 기하학을 중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과학 지식을 이용하여 농민의 생산성을 높이고 생활을 개선코자 노력하였다. 스스로 고향 근처에 넓은 땅을 확보 시험농장을 만들어 서양의 관개시설을 도입하고 작물재배 종자개량 등에 힘썼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농업 백과사전인 “농정전서(農政全書)”를 저술하였다.



그는 고구마(甘藷)의 우수성을 알고 당시 복건성(福建省)에 재배되고 있던 고구마를 자신의 시험농장에서 재배하는데 성공하고 인근 지역에도 보급하였다. 본래 고구마는 스페인의 식민지 중남미가 원산지로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을 통해 중국 서남부 일본의 사츠마( 薩摩 지금의 가고시마)와 대마도에 보급되어 있었다.



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저장 요리 방법 등을 기록한 서광계의 “농정전서”가 100여년 후 조선에 전래되었다. 그 책을 통해 고구마를 알게 된 조선 통신사 조엄(趙?)은 일본에서 고구마 종자를 구해 온다. 당시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를 부모에게 효도하는 작물이라고 “효행마(孝行麻)” 즉 일본어로 “코우코우마”라고 불렀다. 우리의 고구마는 이렇게 이름과 함께 대마도에서 전래되었다고 한다. 감자보다 60년이나 빠른 1760년대 초였다.



서광계는 예부상서와 대학사를 지내고 베이징에서 죽었지만 후손들은 그를 상하이 시험농장으로 이장하여 새로운 묘소를 만들었다. 이곳에 서씨(徐氏)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쉬자후이(徐家匯)라는 지명을 얻었다. 서씨들이 강물이 합류하듯 모여 사는(匯居) 곳이란 의미가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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