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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맞닥뜨리는 모욕과 낭비

중앙일보 2014.03.27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그는 얼마 전에 은퇴한 선배 남성이다. 오후 두 시의 광화문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근처 미술관에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근처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그의 은퇴 후 근황을 들었다. 클라리넷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고, 전시회를 보러 다니며, 청계천변을 산책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예전 인맥들과 점심 식사 약속을 자주 만드는 듯했는데, 내 이름도 약속 명단 끝자리에 끼워 넣었다. 그는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에게서 건너오는 분위기는 쓸쓸했고, 주변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듯했다. 한참 활기차게 일할 때의 그를 기억하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남자들은 일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세대 직장인들 중에는 워커홀릭이라 불릴 만한 이들도 흔하고, 어떤 이에게는 직업이 정체성의 전부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이 평생 일한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은퇴라는 제도를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그것은 남자에게 치명적인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은퇴 제도를 고안한 사람 역시 은퇴의 순간 자신이 한 일을 후회했을 것이다. 은퇴는 자본주의 사회가 남자에게 가하는 ‘모욕과 낭비’처럼 보인다.



 1980년대 미국 자동차 공장들에서는 수많은 나이 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고 한다. 회계장부와 경제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정리해고였다. 그 직후 어쩐 일인지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톰 피터스의 『뛰어난 장점들을 찾아서(In Search of Excellence)』에 따르면 그 공장들은 공장 전체를 돌아보면서 작업 상황을 감독해줄 사람으로 나이 든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고 한다. 임금을 더 많이 주고 근무 시간은 더 짧게 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들은 어떤 기계가 언제쯤 문제를 일으킬지, 개인들의 긴장이 언제쯤 위기 국면으로 전환될지 명확히 짚어낼 수 있는 육감을 가지고 있었다. 징후를 읽어내는 통찰력을 발휘하여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경험으로 쌓은 그런 노하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은퇴 제도가 없던 시대에는 모든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어른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평생토록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혜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면서 죽는 순간까지 영광스럽게 일했다.



 거리에서 만났던 선배는 다음 학기쯤 대학에 강의를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확정된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갖고 모색 중이라고 한다. 그가 평생 쌓아온 전문성이 그런 방식으로 후배들에게 전해진다면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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