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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황제 노역' 판결, 지역 카르텔부터 깨야 한다

중앙일보 2014.03.27 00:18 종합 30면 지면보기
‘일당 5억원’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 판결을 통해 지연(地緣)과 혈연(血緣)으로 짜인 ‘지역 카르텔(연합)’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판결을 받은 과정에 지역 법조계와 기업인 간의 커넥션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1심에서 검찰이 구형과 함께 벌금형 선고유예를 요청했는데 당시 검사가 전남 출신이었다. 이어 향판(鄕判·지역법관)인 장병우 현 광주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은 항소심에서 문제의 ‘일당 5억원’ 판결이 나왔으나 상고하지 않은 검사도 전남 출신이었다. 더욱이 허 전 회장의 아버지부터 사위·매제까지 법조인이고, 허 전 회장의 친동생은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을 후원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나아가 장 원장이 친형인 장병완 민주당 의원 지역구가 있는 광주시의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은 벌금을 노역으로 대신하는 환형유치(換刑留置)의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대검찰청도 허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를 중단시키고 벌금에 대한 강제집행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의 뿌리에는 환형유치 제도의 맹점과 함께 지역 카르텔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설사 허 전 회장 재판에 지역 인사들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증 요법에 치우친 미봉책만으로 법원·검찰에 대한 불신을 걷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판사나 검사가 “고향 경제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지역 정서에 매몰되다 보면 사회 전체의 정의와 상치되는 판단이 나올 위험성이 상존한다.



 대법원은 지역법관제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검도 해당 지역의 문제와 직결된 사건은 연고가 없는 검사에게 처리토록 하는 등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지역에서도 작동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론이 악화된 후에야 제도 손질에 나설 게 아니라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법에 대한 신뢰는 한번 흠집이 나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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