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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DDP라는 멋진 '멍석'

중앙일보 2014.03.27 00:17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여기가 정녕 서울일까. 초미니 스커트에 20㎝ 가까운 힐을 신고 다니는 아가씨, 청록색 슈트를 아래위로 빼입은 청년, 길을 쓸고 다닐 치렁치렁한 꽃무늬 코트를 입고 있는 소녀-. 이뿐이랴. 이들을 좇아 카메라를 들이대는 수십 명의 블로거와 사진작가들까지-. 런던·파리 같은 패션 도시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지난주부터 어제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펼쳐졌다.



 멋쟁이들의 정체는 이내 드러났다. 21일부터 26일까지 DDP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에 온 이들이었다. 다만 바이어나 기자, 업계 관계자만이 아닌 패션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이 몰렸다. 마치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 옷에 힘을 팍팍 주면서 ‘장외 패션쇼’를 벌인 것이다.



 재미난 볼거리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켤까 말까 망설이던 중 한 20대에 눈길이 확 꽂혔다. 미니 스커트에 망사 스타킹, 속옷처럼 가슴만 겨우 가린 상의 위에 재킷을 입었다. 누가 봐도 ‘촬영 0순위’다. “오늘 몇 번 찍혔어요. 평소보다 과하게 입은 거 맞아요. 의상을 전공하고 있는데 내 감각이 괜찮은지 알고 싶고…. 아, 지금 입은 치마도 제가 만들었거든요. 혹시 알아요? 잡지에 이름이라도 나갈지….”



 돌이켜보면 일년에 두 번 서울패션위크를 갈 때마다 비슷한 모습을 보긴 했다. 다만 이렇게 대대적인 규모는 아니었다. 그간 서울패션위크가 열렸던 대치동 SETEC, 올림픽공원, 용산 전쟁기념관 그리고 여의도 IFC까지, 2%가 부족했다. 도심에서 멀거나, 행사장 자체가 좁아터졌거나, 패션을 들이대기엔 삭막한 분위기였다. 한데 우주선 같은 이국적 형태에다 너른 광장을 둔 DDP가 그 모든 아쉬움을 해결해주며 제대로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DDP는 개관 전부터 비난도, 우려도 많았다. ‘규모가 너무 크다,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역사성을 살리지 못했다’ 등등 시선이 삐딱했다. 게다가 건축적 요소는 차치하고라도 운영을 걱정하는 이들이 꽤 됐다. 내부 콘텐트를 잘 채우지 못하면 겉만 번지르르한 ‘애물단지’가 될 것이며, 또 수익을 좇아 대관을 하다 보면 전시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하나 과연 문화 콘텐트라는 게 전시나 공연, 행사처럼 꼭 ‘채워 넣어야’ 할 무언가일까. 누군가 잘 차려 놓는 밥상과 같은 걸까. 판만 제대로 벌여주면 자생적으로, 상호작용으로 생겨나는 도시 문화도 충분히 많다. 홍대의 버스킹(길거리 공연)과 이태원의 감성 벼룩시장만 봐도 그렇다. 공간 특성에 맞게 끼 많은 젊은이들이, 살뜰한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도시 문화다. 그러니 DDP처럼 근사한 멍석에선 더 멋진 문화 콘텐트가 생겨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Dream, Design, Play(꿈꾸자, 만들자, 즐기자)’. DDP의 캐치프레이즈다. 그곳의 콘텐트 역시 이 문구처럼 탄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나.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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