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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무효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를 찾은 오사카 시민들

중앙일보 2014.03.27 00:14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양선희
논설위원
고백하자면, 젊어 한때 투표를 거부한 적이 있다. 투표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답답함과 부조리한 정치권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투표로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을 뽑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믿었다. 돌이켜 보면 허접스럽고 유치한 발상이었다. 포기는 어떤 경우에도 저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젊은 열기가 한풀 꺾인 후였다.



 물론 투표에 참여하는 지금도 의구심이 없는 건 아니다. ‘이 사람이라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사심 없이 일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표를 행사한 적이 없다. 차악을 골랐다고 믿었는데, 그가 정치인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임을 증명하고 당리당략의 투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흔했다. 그래서 투표 후엔 ‘손가락을 뽑아 버리고 싶다’는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이런 ‘투표의 무력감’이 유권자들을 투표의 포기와 후회 사이에서 서성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번에 6만여 표의 무효표가 나온 일본 오사카(大阪) 시장 재선거 투표 결과를 봤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효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장을 찾은 오사카 시민은 6만7500여 명, 전체 투표 수의 13.53%나 됐다.



이번 재선거는 애초부터 하시모토 도루 시장의 정치쇼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그는 지난 선거에서 오사카시(市)와 오사카부(府)를 통합해 오사카도(都)로 만들겠다고 했으나 시의회가 반대하자 지난달 초 민의를 묻겠다며 사임하고 재출마했다. 이에 들어간 선거비용만 6억 엔(약 63억원). 다른 주요 정당은 “하시모토의 정치쇼에 놀아날 수 없다”며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고 이름 없는 무소속 후보들만 출마했다. 그러니 결과는 하시모토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나 이 선거의 주인공은 다시 돌아온 하시모토가 아니라 투표에 참여해 무효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됐다. 백지투표(4만5098표)는 2위 후보 득표(2만4004표)보다 많았고, 나머지 2만여 표엔 ‘쇼하지 마라’ ‘세금을 소중히 쓰라’는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이에 일본 언론들도 시쳇말로 뒤집어졌다. 위안부 망언 등으로 일본 우익의 구미를 당긴 하시모토에게 우호적이었던 우익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마저 사설에서 “이번 재선거는 너무 난폭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이번 선거는 인기가 없었다. 투표율 자체가 23.59%로 시민 4분의 3 이상이 투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투표 거부 자체는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못했다. ‘당신의 행동이 틀렸다’고 경고를 한 건 무효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를 한 시민들이었다.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투표를 하라’는 말의 의미를 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 줬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우리 유권자들도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글=양선희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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