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억 년에 0.91초 오차 … 이터븀 원자시계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2014.03.27 00:11 경제 11면 지면보기
찰나(刹那)가 만든 무한대의 공간. 이처럼 모순적인 시간과 공간의 조합 속에 우주는 태어났다. 미국 연구진이 빅뱅(Bigbang·대폭발) 뒤 우주가 한순간 급팽창(Inflation)했음을 보여 주는 근거, 즉 우주배경복사(CMBR)의 중력파 패턴을 찾아냈다고 최근 발표하면서 ‘시간의 역사’가 새삼 호기심을 자극한다. 빅행 후 138억 년, 시간은 쉼 없이 흘렀고 인류는 그 편린이라도 붙잡기 위해 애써 왔다. 정밀 시계의 개발이 대표적인 예다. 극한의 정확도를 가진 원자시계와 그 속에 담긴 오늘날 시간의 의미를 소개한다.


표준과학연, 11년 만에 개발
빛 이용해 원자의 진동 측정
"최종 목표 300억 년 1초 오차"
위성항법시스템에 핵심 역할

일정한 주기가 있는 존재를 척도로 삼아 모든 시계는 시간을 잰다. 예컨대 해시계는 매일 뜨고 지는 태양, 물시계는 일정하게 흘러내리는 물을 기준으로 한다. 문제는 이런 시계의 정확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해시계와 물시계의 잣대가 되는 지구의 자전속도와 물의 유속 자체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요즘 시계는 원자를 척도로 쓴다. 모든 원자는 일정한 주기로 진동을 한다. 이를 고유진동이라 부른다. 이런 원자에 동일한 주파수(1초에 진동하는 횟수)의 전파를 쏜 뒤 되돌아 나오는 신호 값을 측정해 시간을 재는 것이다.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1초를 ‘세슘133(Cs133) 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할 때 걸리는 시간’으로 정의했다.



 최근에는 세슘 대신 다른 원자를 이용해 시간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고유진동 수가 더 높은 원자를 이용하면 그만큼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의 눈금이 촘촘할수록 길이를 더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가장 유력한 후보 원자는 이터븀(Yb)과 스트론튬(Sr)이다. 이터븀은 고유진동 수가 초당 518조2958억3659만865번이다. 세슘보다 5만6000배 이상 크다.



 ◆빛을 사용하는 원자시계=지난달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소재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이터븀 원자시계를 만들었다. 2003년 개발에 착수한 지 11년 만이다. 이 시계는 일명 ‘광(光)시계’라고 불린다. 마이크로파를 쓰는 세슘 시계와 달리 주파수 대역이 훨씬 높은 빛(레이저)을 사용해 이터븀 원자의 진동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이터븀 원자를 가둬 두는 ‘그물(격자)’을 만드는 데도 레이저가 쓰여 ‘광 격자 시계’로도 불린다.



 KRISS는 이터븀 시계의 오차(시계의 주파수가 원자 고유진동 수와 일치하지 않을 상대 측정 불확도)가 1초에 2.9×10-16 초라고 밝혔다. 이는 1억 년에 약 0.91초가 틀릴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시계인 미국 실험천체물리학합동연구소(JILA)의 스트론튬 원자시계(50억 년에 1초 오차)보다는 못하지만 2008년 KRISS가 개발한 세슘 시계(KRISS-1, 300만 년에 1초 오차)나 현재 개발 중인 루비듐(Rb)-세슘 이중원자 분수시계(KRISS-F1, 5000만 년에 1초 오차 목표)보다는 성능이 훨씬 앞선다.



 유대혁 KRISS 시간센터장은 “계속 오차를 줄여 가고 있으며 300억 년에 1초가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GPS·이동통신의 핵심=정확한 시계는 항법(航法·Navigation)에 핵심 역할을 한다. 비행기·선박·차량 등에 쓰이는 미국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대표적인 예다. GPS는 최소 3개의 위성이 보내는 신호가 수신기에 전달되는 시간을 계산해 위치를 확인한다. 3차원 공간정보(X·Y·Z)와 시간정보(T)를 조합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이다. 만약 시간에 오차가 있으면 위치정보의 정확도가 크게 떨어진다. GPS 위성은 세슘·루비듐 원자시계를 탑재하고 있다. 크기·무게를 줄이기 위해 정확도를 낮춘 모델이다. 더 정밀한 시계를 상용화·경량화해 한국의 위성에 실어 올릴 수 있다면 GPS를 대체할 ‘한국형 위성위치확인시스템(GNSS)’을 구축할 수 있다.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는 데도 정밀시계가 쓰인다. 시분할다중접속(TDMA)·주파수분할다중접속(FDMA)의 기술은 정확한 시간정보를 바탕으로 시간·주파수를 쪼개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게 한다. 통신망의 완벽한 동기화(同期化)가 이뤄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기술이다. 전문가들은 “더 정밀한 시계로 통신망을 구축하면 더 세밀한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원자시계의 가치는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빛난다. 2012년 한국천문연구원에 문을 연 ‘동아시아 초장기선전파간섭계(VLBI) 연구센터’는 한국·중국·일본의 전파망원경 관측치를 합쳐 직경 5000㎞의 단일 망원경처럼 활용한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관측한 데이터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선 측정시점 동기화가 필수다. 여기에도 정밀한 원자시계가 쓰인다.



 원자시계 자체가 실험도구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중력에 의해 달라진다. 이번에 우주배경복사에 남아 있는 중력파의 흔적을 발견한 것도 그 증거 중 하나다. 하지만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 연구팀은 2010년 원자시계를 이용해 고도가 높아질수록(중력이 약해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사실(중력에 의한 적색편이)을 한발 먼저 입증했다. 시계를 지상 3m 위로 들어 올리자 시간이 900억 분의 1초 정도 빨리 간 것이다. 시간을 극한까지 쪼개 잴 수 있는 원자시계 덕분에 얻어 낸 연구 성과다.



대전=김한별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