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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여성들, "러시아인에게는 섹스 파업"

중앙일보 2014.03.27 00:02
“사랑에 빠지세요, 오 검은 눈썹의 아가씨들이여 ~.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과는 안돼요.”



우크라이나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타라스 셰브첸코(1814~61)가 1838년에 쓴 시 ‘카테리나’의 일부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식민지 백성 중에서도 최하층인 농노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억압의 현실을 상기시키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시를 많이 썼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강한 반감을 작품 곳곳에서 드러냈다.



그로부터 176년이 흐른 요즘, 셰브첸코의 후손인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를 상대로 의미심장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표어는 “러시아인에게 주지 말자 (Don’t Give it to a Russian).” 셰브첸코가 시 ‘카테리나’에서 당부한 대로 러시아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며 다같이 ‘섹스 파업’에 나설 것을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촉구하는 운동이다.



미국의 시사잡지 월간 애틀랜틱은 24일(현지시간) 온라인판에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러시아 남성들을 상대로 섹스 파업에 나섰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잡지는 “크림반도 합병 이후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상품 불매운동에 나선 가운데 일부 여성들은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상품(성)’에 대한 거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인에게 주지 말자”는 운동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적(러시아)과 맞서 싸우자는 뜻”이라고 잡지는 분석했다.



“러시아인에게 주지 말자”는 섹스 파업을 촉구하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섹스 파업 운동은 페이스북을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반전 평화운동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확산하기를 바라며 “러시아 여성들이여~ 우리와 함께 하지 않을래요?”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러시아인 남성을 상대로 섹스 파업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여성단체의 한 회원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살면서 ‘Delo.UA’라는 뉴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편집장으로 확인됐다. 그는 이번 운동과 관련된 페이스북 글이 러시아어로 작성된 것에 대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반대운동이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주민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사용자에게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 출신 여부를 떠나 6명 중 2명꼴로 러시아어를 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인에게 주지 말자”는 표어를 비롯한 일부 내용이 러시아어로 작성된 점을 들어 정말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전개하는 운동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부 러시아 블로거들은 운동을 추진하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매춘 여성’이라고 비난했다.



여성들의 섹스 파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일본 도쿄 도지사 선거 당시 한 여성단체는 “성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가진 도지사 후보에게 투표하는 남성과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2003년 서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선 ‘평화를 위한 대중행동 여성단체’가 내전을 끝내기 위한 섹스 파업을 주도했다. 과거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들로 구성된 국제여성운동단체 페멘(Femen) 회원들은 “총리가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야비하고 모욕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정부 부처 관료들의 부인과 애인 등을 상대로 섹스 파업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고대 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기원전 410년에 쓴 희극 ‘리시스트라타(Lysistrata·여자들의 평화)’에서도 여성들이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끝낼 것을 촉구하며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정헌 기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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