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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국민소득 높은데 내 지갑은 왜 얇지?

중앙일보 2014.03.27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국민총생산(GDP) 산출 방식이 바뀌면서 지난해 성장률이 3%로 높아졌다. 1월에 발표됐던 속보치(2.8%)보다 0.2%포인트 높다. 새 기준에 따라 산출된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6205달러였다. 2012년 1인당 GNI는 2만2708달러에서 2만4696달러로 늘어났다.


1인당 2869만원 … 체감소득과 차이 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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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가 커졌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경제 상황은 똑같은데 셈법을 바꿔 생긴 결과이기 때문이다. 생산이나 소비가 늘고 경기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연구개발(R&D) 비용 같은 것들을 새로 GDP에 포함시킨 영향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나 소득과의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원화 기준으로 2869만원이다. 4인 가구라면 1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려야 평균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국세청에 따르면 2012년 연말정산 대상자 근로소득자 1576만 명 중 연봉이 1억원을 넘는 사람은 전체의 2.6%인 41만여 명에 불과했다.



 통계와 현실이 너무 차이가 난다. 가장 큰 이유는 한은이 발표하는 국민소득에 기업과 정부의 소득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벌어 쌓아둔 유보금과 정부가 걷은 세금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한은은 가계와 민간 비영리단체의 소득만 계산한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을 따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PGDI는 1608만원이었다. 물론 이 금액도 모두 가계소득은 아니다. 종교·자선단체 같은 민간 비영리단체의 소득이 포함되는데, 정확히 알기 어렵다. 정영택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가계부분의 1인당 소득은 15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월평균 가구 소득을 연간으로 환산하면 4994만원이 나온다. 이를 평균 가구원수 3.25명으로 나누면 1인당 연소득은 1536만원 정도다. 결국 국민들이 실제 버는 돈은 1인당 GNI의 60%가 안 되는 셈이다.



 통계와 체감의 괴리는 올해 국내총생산과 국민소득 산출 기준이 바뀌면서 더 커졌다. 무엇보다 그동안 GDP에 잡히지 않았던 R&D 비용과 드라마·오락 제작비 같은 것들이 새로 반영됐다. 예컨대 200원짜리 원자재에 100원의 R&D 비용을 투입해 500원짜리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면 지금까진 GDP가 200원으로 계산됐다. 원자재값 200원과 R&D 비용 100원을 뺀 나머지를 부가가치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기준으론 GDP가 300원으로 계산된다. 기술 등 지식재산생산물은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단순 비용으로 처리할 게 아니라 부가가치가 있는 자본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새 기준은 유엔이 2008년에 정했다. 한국은 이번 개편으로 GDP가 7.8%(2010년 기준) 늘었다. 앞서 이 기준을 적용한 미국(3.6%), 호주(4.4%), 캐나다(2.4%)보다 폭이 크다. R&D 투자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 대비 R&D 지출 비율은 이스라엘·핀란드에 이어 세계 3위다.



 문제는 이런 항목이 경기나 개인 소득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R&D는 기업 내부에서 주로 이뤄진다. 무기가 많아졌다고 경기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에 따라 전체 국민소득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가 더 뚜렷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국민소득 중 가계의 몫은 2007년 63.5%에서 지난해 61.2%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의 비중은 21.9%에서 25.7%로 증가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2월 서울파이낸셜포럼 강연에서 “경제성장이 고용창출과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개인과 기업 간 소득격차가 축소돼야 성장과 소득 상승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이런 현상을 ‘소득 없는 성장’ ‘임금 없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내부에 현금을 쌓아두려는 것을 억제하고 임금을 더 주거나 배당을 하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은 투자가 대규모로 이뤄지고 불확실성도 커져 기업 입장에선 현금 확보가 필수적이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원배·이지상 기자



◆GDP(Gross Domestic Product)=국내총생산을 말한다. 우리나라 국적이든 외국인이든 관계없이 우리나라 국경내에서 이뤄진 생산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한 나라의 영역내에서 가계·기업·정부와 같은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동안 생산활동에 참여해 창출한 부가가치 또는 최종생산물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한뒤 더한 것이다.



◆GNI(Gross National Income)=국민총소득을 뜻한다. 한 나라의 국민이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다. 한 국적 소유자에 해당하므로 해외로부터 자국 국민이 받은 소득(국외수치요소소득)도 포함된다. 반면 국내총생산(GDP) 중에서 외국인에게 지급한 소득(국외 지급요소소득)은 제외된다.



◆PGDI(Personal Gross Disposable Income)=가계총처분가능소득을 말한다. 가계와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의 소득을 더한 수치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와 비영리단체를 제외환 경제주체(기업·정부 등)가 생산한 기업 수익, 세금, 사회보험부담금을 뺀 것이다. GNI가 실제 국민의 소득과 괴리가 있어 PGDI가 제한적이지만 실질적인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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