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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프면 생계 막막 … 벼랑 끝 '낀 계층' 117만 명

중앙일보 2014.03.25 01:31 종합 12면 지면보기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벌어진 뒤 한 달이 돼 간다. 이 사건 직후 저소득층의 생계 비관형 자살이 5건 잇따랐다. 뇌졸중으로 일을 못하게 된 제빵사, 간암 말기 상태에서 운전대를 놓은 택시 운전사 등이다. 한 해 106조원의 복지예산을 쏟는데도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을까. 그 사건들을 분석하고 방치된 빈곤층 실태, 복지 제도의 허점을 두 차례 시리즈로 짚어본다.

 

[심층 리포트] 세 모녀 사건으로 본 복지 사각지대 <상>



 내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는 곳이었다. 10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판자촌 좁은 골목길을 여남은 번이나 돈 끝에 김양수(53)씨를 만났다. 5평 남짓한 방은 어두컴컴했고, 남길 것보다 버릴 것이 많아 보였다. 볼이 움푹 팼고 얼굴이 새까맣다. 나이보다 10년은 더 들어 보인다. 남루한 옷마저도 찢어져서 너덜너덜했다.





 김씨는 2년 전까지 건설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밥은 먹고 살았다. 가족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김씨가 다리를 다치면서였다. 공사장에서는 “중국인도 많고 멀쩡한 한국 사람도 많다”며 쫓아냈다. 막노동만 해온 터라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매일 술로 괴로움을 잊었다.



 생활은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보증금 200만원에 27만원의 월세도 낼 수 없었다. 아내는 지방으로 떠났다. 올해 초엔 아내가 추운 데서 자다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딸(19)은 학교를 그만뒀다.



 복지 혜택은 ‘그림의 떡’이었다. 딸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가 구청에 “도와줄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했지만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김씨의 아내 소득과 재산을 조회해야 하고, 그러려면 아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아내가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닿지 않아 이게 불가능했다. 아내가 죽은 뒤로 딸도 같은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역시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딸이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리지 않아 수급자 신청을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서울시 북부병원 팀이 김씨를 병원으로 데려와 알코올 중독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딸의 학교 교사가 구청에 도움을 청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김씨는 아직도 방치돼 있을 것이다.



 세 모녀 사건, 연 이은 5건의 극단적 선택, 김씨…. 벼랑 끝 사람들의 공통점은 ‘질병’이었다. 김씨는 공사판에서 다리를 다쳤고, 세 모녀 사건의 어머니 박모(61)씨도 퇴근길에 팔을 다쳤다. 다치거나 병이 들어서 근로능력을 상실했지만 이게 반영되지 않아 복지 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연쇄 자살 5건 중 1건(울산 중구 안모씨와 아들)을 빼고는 모두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 소득(재산 포함)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극빈층 생활을 하지만 부양의무자(자녀)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바람에 정부 보호를 못 받는 빈곤층이 117만 명(2010년)에 달한다.



 종전의 자살 사건 ‘심리적 부검’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확인된다.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최명민 교수팀이 2012년 25명의 자살 사건을 분석했다. 11명은 저소득층이었고 이 중 8명(72%)은 질병이 자살의 원인이었다. 병원에 가지 못하고 만성질환으로 통증을 호소하던 80대 부부, 허리통증 때문에 수술을 했지만 호전되지 않자 처지를 비관하던 60대 여자 등이다. 이들 중 1명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았다. 최 교수는 “질병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이로 인한 지출이 늘어날 경우 빈곤층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 과거 3년간 발생한 주요 생계형 사건·사고 20건을 분석한 결과, 17건이 질병·장애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원인이었다. 또 병을 앓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지 않거나, 가족이 간병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사회통합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질병은 기초보장수급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주요 원인”이라며 “이들을 발굴하고 복지 제도에 신속히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영·김혜미·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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