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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세 저주' 풀까 … 아베노믹스 운명의 4월

중앙일보 2014.03.25 00:59 경제 4면 지면보기
4월 1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겐 운명의 날이다. 일본 정부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올린다. 17년 만의 인상이다. 아베 총리는 자신만만하다.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주가가 떨어지자 그는 “지금이 일본 주식을 (싸게) 살 적기”라고 밝혔다. 24일(현지시간) 홍콩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내각부 부대신(차관급)이 한 수 보탰다. 이날 “소비세를 8%에서 10%로 추가 인상할 지 여부를 올해 안에 결정짓겠다”고 말했다.


내달 1일 소비세 5 → 8%로 올려
1989년 도입, 1997년 5%로 인상
정권 붕괴, 잃어버린 20년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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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세는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하다. 물건을 살 때 자동으로 붙는다. 세율을 조금만 올려도 많은 세금을 수월하게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역대 일본 어느 내각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세금인 탓에 저항이 특히 크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세율을 잘못 올렸다간 소비 위축이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소비세의 저주’다. 아베 정부의 도전이 일본 경제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일본 소비세는 1989년 4월 1일 탄생했다.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당시 총리가 총대를 멨다. 소비세 신설을 검토할 때만 해도 일본은 4년 만의 경제 회복을 자축하고 있었다. 85년 플라자합의(선진 5개국 합의에 따른 엔화 절상), 87년 블랙먼데이(주가 폭락) 사태를 딛고 경제는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다. 88년 설비투자가 15%, 민간소비가 5% 늘었다는 통계는 다케시타 내각이 추진하는 소비세 신설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소비세 시행과 함께 경제는 나빠졌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리쿠르트 사건(최고위층 연루 뇌물 사건)’까지 터졌다. 다케시다 총리는 소비세 시행 두 달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90년 일본 주가는 다시 폭락했다.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었다.



 일본 정부가 소비세에 다시 손을 댄 건 8년 후다. 재선에 성공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90CE>) 총리가 칼자루를 쥐었다. 3%였던 세율을 97년 4월 5%로 올렸다. 96년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기준)은 5년 만에 최고치로 분위기는 좋았다. 행정·금융 개혁을 골자로 ‘하시모토 비전’을 추진한 하시모토 총리의 인기도 소비세 인상을 단행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하시모토 총리도 소비세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그해 외환위기가 아시아를 덮쳤다. ‘잃어버린 10년’에 지쳐 있던 일본 경제는 다시 고꾸라졌다. 일본 수출기업과 부동산·금융회사가 차례로 무너졌다. 혹독한 디플레이션의 연장이었다. 하시모토 총리는 98년 7월 실각했다.



 이제 아베 총리의 차례다. 소비세의 저주를 과연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전망은 엇갈린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97년과 달리 정부가 소비 증세에 맞춰 5조5000억 엔(약 57조7400억원)의 경기 부양책을 준비했다. 소비세 인상으로 경기가 식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 국민 51%는 ‘세금을 올려도 소비를 줄이지 않겠다’고 응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외부 시각은 좀 더 냉정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비세 인상에 앞서 가격을 꼼수로 올리는 업체가 늘고 있다. 소비세 인상 충격을 분산한다는 명목으로 일본 정부가 이를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노믹스의 제1 목표는 디플레이션 탈출이다. ‘경기 회복→임금 인상→물가 상승’의 선순환을 타야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아베 정부는 ‘경기 회복’이나 ‘임금 인상’을 건너뛰고 ‘물가 상승’에 매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FT는 “아베 정부가 기본급 인상보다 물가 상승에 주력하면서 일본 국민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제 상황도 그리 녹록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닛케이지수는 올 들어 10.9% 떨어지며 아시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장담한 대로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현숙 기자



◆디플레이션과 잃어버린 10년=오랫동안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도 함께 낮아지는 현상을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한다. 90년 거품 경제가 꺼지며 10년 넘게 일본은 침체를 겪었다.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다. 디플레이션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일본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 ‘잃어버린 20년’이란 말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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