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view &] 공무원이 규제의 뿌리 아니다

중앙일보 2014.03.25 00:32 경제 11면 지면보기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최근 규제개혁을 두고 공무원이 동네 북이 되고 있다. “규제는 공무원의 밥그릇이다, 고양이는 절대 생선을 포기하지 않는다”라든가, “관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라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공무원들은 억울할 것이다.



 30여 년 공무원을 한 사람이라서 후배 공무원들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규제의 뿌리를 모르면 결코 그 뿌리를 캐내지 못하고, 적의 실체를 모르면 완승을 거둘 수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규제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충정에서 적을 알고 싸우라는 뜻에서 말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만들고 싶은 대로 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법을 만들 뿐이다. 누군가 그 규제를 요구하는 세력이 있고 여론이 그 요구를 지지할 때만 입법이 가능하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고하고 가장 해악이 큰 규제인 수도권 규제나 그린벨트 규제는 공무원들이 자기 밥그릇을 만들려고 도입한 것이 아니다. 수도권에서의 투자를 규제하면 지방으로 그 투자가 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지방의 요구에 중앙정부가 굴복한 것이다. 그린벨트의 경우도 1998년 헌법불합치 판결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정당한 절차와 보상이라고 하는 전제를 생략하고 손쉽게 녹지보전이라는 또 다른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도입된 것이지 공무원이 밥그릇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97년 당시 공무원이었던 필자는 김문희 헌법재판관을 만나서 그린벨트가 녹지를 더 많이 보전하는 효과도 없으면서 국민의 권리의 본질을 침해하고 있으며 경제활성화에 지장만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위헌 판결을 내려달라고 호소하고 다닌 기억이 있다.



 공무원들이 자기 밥그릇을 삼으려고 이런 규제를 만들었다면 적당히 풀어줄 수 있도록 설계를 했지 이렇게 강고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규제가 공무원의 밥그릇이 되려면 너무 강해선 안 된다. 적당히 풀어줄 수 있게 만들어야 최상의 밥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규제를 풀어줄 때 더 대접을 받는다.



 이 정도의 강한 규제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강한 규제의 배후에는 정부와 법의 힘을 빌려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이익집단들이 있다. 소비자, 즉 전 국민의 보편적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는, 수입을 막아 달라거나, 경쟁자의 진입을 규제해서 자신의 상권을 보호해 달라는 요구에서 비롯되는 규제들이 그 예다.



 이런 규제는 집중된 이해관계가 있는 이익집단의 정치적 힘에 정치권이 굴복해서 생기는 것이다. 집중된 부분의 이익이, 더 크지만 분산된 전체의 이익을 이기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정부는 이런 경우에 개별적으로는 아주 작지만 모아 놓으면 훨씬 더 큰 전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규제에 반대를 한다. 그러나 헌법에 의해 선출직의 판단에 복종하도록 되어 있는 공무원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규제를 어떻게 공무원의 힘만으로 없앨 수 있겠는가.



 이런 규제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규제가 실효성은 거의 없으면서 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에 중대한 지장만 초래한다’는 것을 규제를 요구하는 사람들부터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그린벨트가 녹지 훼손의 위치만 바꾸었을 뿐 훼손녹지의 총량을 줄이지는 못했으며, 수도권 규제가 일부 투자를 경기도 경계 바로 넘어로 밀어낸 효과는 있었지만 대구, 부산, 광주에까지 투자가 가도록 하는 효과는 별로 없었고, 더 많은 투자를 외국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도록 해야 한다. 또 대규모 소매점들의 영업일수, 영업시간, 영업방법에 대한 갖가지 규제가 동네 소매점이나 재래시장으로 고객의 발길을 돌리게 하지 못하고 소비자 불편과 고용 감소만 초래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규제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을 그대로 두고 공무원에게 규제를 없애라고 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규제의 득실을 가시화해서 규제 요구를 자제하게 하고 규제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해서 공무원들을 도와 주어야만 규제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아무쪼록 정부의 이번 규제개혁 노력이 손톱 밑의 가시를 제거해 주는 민원 해결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목구멍의 가시, 뱃속의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준의 규제혁파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