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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하루 노역에 벌금 5억원 탕감 … 간 큰 향판

중앙일보 2014.03.25 00:06 종합 30면 지면보기
400억원대 벌금과 세금을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귀국해 광주교도소에서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을 시작했다. 지난 토요일(22일) 유치된 허 전 회장은 공휴일에는 노역을 하지 않고도 벌금을 탕감해 준다는 기준에 따라 이틀간 꼼짝도 하지 않고 10억원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시작한 노역도 ‘일당 5억원’에 맞지 않는 잡일이었다.



 허 전 회장은 2007년 법인세 500억원을 내지 않고 회사 공금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2010년 2심 재판을 받던 중 출국해 생활해 오던 허 전 회장은 2011년 대법원에서 횡령 등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이 확정됐다. 법원은 허 전 회장이 벌금을 내지 못할 경우 노역형에 처하도록 환형유치(換刑留置)를 선고하면서 하루 일당을 5억원으로 정했다. 50일만 노역장에서 일하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입국한 허 전 회장은 당연히 노역장으로 향했다.



 우리 형법은 노역장 유치기간을 최소 1일에서 최대 3년으로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일당을 정하는 것은 법관의 재량에 맡겨 둔다. 통상적으로 일반인의 노역 일당은 5만~10만원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인 광주고등법원은 허 전 회장의 일당을 일반인의 5000~1만 배로 정했다. 사상 최고의 노역 일당 액수였다.



 이를 두고 지역 재판부가 호남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 회장에게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광주고법 권역에서만 근무해 온 간 큰 ‘향판(鄕判)’이 국민의 법 감정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던 결과다. 이번 사태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논란을 촉발해 사법부의 신뢰에 크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휘발성이 강한 이슈다. 사법부는 아무리 법관 재량이라고는 하지만 대다수 납득할 수 없는 노역형이 나온 과정과 근거를 분명히 따져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다시는 특혜성 노역형이 나오지 않도록 일당·유치기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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