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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카드로 회식 결제한 부장 사표 받았죠"

중앙일보 2014.03.25 00:06 경제 6면 지면보기
“오늘은 김 차장 법인카드로 결제해.”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
준법경영 하려면 CEO 의지 중요
나도 해외출장 땐 본사 결재 받아

 왁자지껄한 부 회식의 끝물. A부장은 부하직원에게 결제를 시켰다. 부하는 부장의 지시대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법인카드로 결제를 했고, 이튿날 회사에 비용처리 보고서를 올렸다. 얼마 뒤 A부장은 ‘윤리경영’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최근 한국지멘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김종갑(64·사진) 한국지멘스 회장은 24일 “법인카드 때문에 퇴사까지 한 것은 심한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본인이 주재한 자리의 비용을 부하직원 명의의 법인카드로 결제하도록 한 것은 ‘심각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짓말은 조직 구성원 간의 신뢰, 시장의 신뢰를 잃게 하는 큰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멘스가 추구하는 것은 신뢰자산”이라면서 “이런 노력들이 지멘스가 167년을 영속하게 한 비밀”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한국 기업들도 준법경영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최고경영자(CEO)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나도 한국지멘스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결재를 받아야만 해외 출장을 갈 수 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2011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에서 지멘스 회장으로 부임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급하게 문상 갈 일이 생겨 검은색 넥타이를 3만원에 구입했는데, 내부에서 이를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뿐이 아니었다. 아침 운동을 마친 뒤 사무실에서 아침을 먹었더니 “회사 돈으로 먹어선 안 된다”고 지적을 했다.



 지멘스가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유리알 경영’을 고집하는 이유는 쓰라린 과거 경험 때문이다. 독일에 본사가 있는 지멘스는 1847년 과학자인 베르너 폰 지멘스가 설립했다. 생산 기계 설비, 발전시설, 고속철도 부품과 시스템, 초음파 진단기 사업 등을 200여 개국에서 벌여왔다. 하지만 2006년 11월 독일 전역에서 검찰과 경찰의 합동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4억6000만 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5513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각국에서 뇌물을 뿌린 사상 최대의 스캔들로 경영진 중 한 명을 남기고 전원을 교체했다. 준법감시인도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리고 부패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선언했다.



 지멘스가 회사를 움직이는 원칙은 간단명료하다. ‘정직할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할 것’. 김 회장의 출장 내역이나 비용도 모든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내부 시스템에 등록된다. 준법윤리 교육은 부서장이 직접 한다. 부하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상사’가 준법의 필요성을 전달해야 그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지멘스는 2011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대학생들에게 ‘동북아 기업윤리학교(NABIS)’를 열고 있다. 그는 “사회에 진출하기 전 대학생들에게 경영 관련 윤리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3년간 10억원을 투자해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최고 경영진들이 모인 본사 회의에서 돈이 될 만한 안건이 올라올 때마다 단기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지 않겠다는 원칙을 이야기해 놀랐다”고 했다. 심지어 그가 “우리가 정말 돈 벌려고 하는 회사 맞나”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기후변화, 인구변화, 세계화, 도시화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느냐를 토론하는 것을 보고 회사의 목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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