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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남경필·이광재의 여야 동업 ②

중앙일보 2014.03.25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먼 훗날. 먼 훗날에 정말. 그가 시진핑에 이어 14억 중국 인민을 대표하는 날이 온다면, 이번 회동은 장기투자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과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17일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제1서기를 만났다. 51세. ‘리틀 후진타오’라 불리는 인물이다. 2017년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입성이, 권력교체기인 2022년 국가주석이 유력하다고들 한다. 그들이 만나는 현장을 봤다. 여야의 초당적 외교를 소개한 1월 14일자 칼럼 ‘남경필-이광재의 여야 동업’이 계기였다. 남 의원실에서 후춘화와 만나는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17일 오후 6시. 후춘화와 광둥성 간부들, 남경필 의원 일행이 성도 광저우(廣州)에 있는 만찬장에 모였다.



 ▶후춘화=“오래전에 남경필 의원, 이광재 지사와 우의를 맺어왔다. 친구를 다시 만나 기쁘다. 광둥성은 경기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남경필=“공교롭게 내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가게 됐다. 당선 후 또 오겠다.”



 ▶후춘화=“(웃음)성공을 축원한다.”



 ▶이광재=“광둥성은 20세기 중국의 역사를 열었다. 후 서기가 중심에 서서 새 역사를 쓰시라.”



 ▶후춘화=“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은 광둥성이 20년 안에 아시아의 4룡(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했다. 3룡은 따라잡았는데, 한국만 못 잡았다. 한국이 너무 빨랐다.”



 아시아 4룡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등장하는 말이다. 88세 노구를 이끌고 덩샤오핑은 1992년 남방을 순회하면서 제2의 개혁·개방을 촉구했다. 남순강화 이후 중국은 또 한번 뛰었다. 광둥성이 중심이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 가장 인구가 많고 부자인 지역이 광둥성이다.



 남 의원의 소개로 후춘화와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남 의원, 이 전 지사가 ‘친구’임을 거듭 강조했다. 배석한 구상찬 상하이 총영사가 기자에게 “두 사람이 후춘화와 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힘”이라고 했다.



 후춘화는 ‘미스터 스마일’이었다. 시종 웃었다. 그러나 결정스타일은 웃는 얼굴과 달랐다.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간부→베이징 공청단(共靑團) 1서기(2006년)→허베이(河北)성 부서기(2008~2009)→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서기(2009~2011)→광둥성 서기. 후춘화가 걸어온 엘리트 코스다.



 네이멍구 시절 계엄을 선포한 일이 있다. 유목민의 대형 시위사건이 발생하자 그렇게 사태를 가라앉혔다. 지금은 ‘다헤이(打黑)’, 암흑세력의 척결에 나선 상태다. 강력한 단속으로 광둥성 내 매춘업소 2000개 이상을 없앴다. 도박, 마약과도 전쟁 중이다. 업소 뒤를 봐준 부패 공무원은 물론 단속을 못한 공안책임자도 가차없이 잘랐다.



 티베트 시절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16세에 베이징대에 입학한 수재였다. 수석급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양지를 버리고 변방에 지원했다. “마음은 크고, 천지는 넓다. 소수민족자치구는 크게 할 일이 많다.” 변방을 지원한 이유였다. 그가 자진해 티베트로 간다는 소식은 톱뉴스였다. 그렇게 내려간 티베트에 20년을 바쳤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간 험준한 옛길, 차마(茶馬)고도에선 6년간 인부들과 먹고 잤다.



 생고생을 한 게 오히려 정치적 자산으로 남았다. 강력한 후견인인 후진타오도 티베트에서 만났다.



이광재 전 지사에 따르면 무엇보다 그가 인정을 받은 계기가 만성적자의 티베트 호텔을 개혁해 흑자로 전환한 것이었다. 그런 문제해결 능력을 중국 공산당은 눈여겨봤다.



 후춘화와 10년을 알고 지낸 이 전 지사는 그를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도도한 듯 평온한 듯 흐르는 물은 불보다 강하다. 가장 좋은 건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말도 있다.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해야만 해야 하는 걸까. 상선약수, 만성적자를 흑자로 바꾸는 리더십을.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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