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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드레스덴 기적' 현장 찾아 … 남북 모두에게 '통일은 기회' 메시지

중앙일보 2014.03.24 01:27 종합 4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연설을 하는 드레스덴은 옛 동독 지역 중 최대 경제력을 보유한 도시다. 독일 통일의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들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베를린장벽 붕괴로 이어진 동독의 반정부 시위는 1989년 9월 4일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됐지만, 이 평화 시위가 동독 전역으로 파급된 것은 드레스덴을 통해서였다.


통일은 준비다<하>통독에서 배우자
드레스덴공대서 통일 연설
평화시위 계기로 베를린 장벽 붕괴
2차대전 폭격당해 도심 85% 파괴
연 10%성장 독일 실리콘 밸리로

 89년 여름부터 동유럽에 있는 서독 대사관을 향한 동독인들의 탈주 행렬이 이어졌다. 그해 10월 4일 프라하에 머물던 동독인들을 태우고 서독으로 향하던 4량의 특별 열차가 드레스덴 중앙역을 지나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드레스덴 주민 5000여 명이 철로로 몰려들었고, 경찰이 열차에 올라타려는 주민들을 무력으로 저지해 시위가 격화했다. 매일 거리 시위가 이어진 지 닷새 만인 9일. 드레스덴시 당국이 시위대 대표단과 대화를 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동독 지역에서 폭력 진압 대신 대화를 시작한 최초의 도시였다.



 89년 12월 19일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의 드레스덴 연설은 머뭇거리던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들의 생각도 바꾼 기폭제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동독 정부의 개혁을 요구했던 시민들이 콜 총리의 연설 이후 통일을 원한다는 뜻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시위 구호가 ‘우리는 국민이다(Wir sind das Volk)’에서 ‘우리는 한 국민이다(Wir sind ein Volk)’로 바뀌었다.



 원래 드레스덴은 동독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였다. 45년 2월 영·미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의 85%가 파괴됐지만 공산 정권은 경제적 이유로, 또 본보기로 복구하지 않은 채 폐허로 남겨뒀다. 서독 방송 청취도 불가능했다. 같은 동독인들도 정보에서 소외된 드레스덴을 ‘바보들의 계곡(Tal der Ahnungslosen)’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그 때문에 개방의 물결이 밀려왔을 때 공산 정권의 거짓을 깨닫고 드레스덴 사람들은 더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드레스덴은 통일 이후 엄청나게 달라졌다. 2011년 국민총생산(GDP)이 151억 유로로 95년 대비 50%포인트 증가했다. 매해 10% 이상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정보기술(IT) 산업 집결지로, 독일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이곳을 박 대통령이 연설장소로 택한 이유는 세계를 향해선 통일 의지를, 국민에겐 통일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이 과장된 것임을, 북한엔 ‘통일 대박론’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리겠다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과 북의 주민들에게 통일이 곧 번영의 기회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통일 후유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 드레스덴을 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이번 독일순방은 다음 달 박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발족하는 통일준비위원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통일준비위원회 가동 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남·남 갈등의 최소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92년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 때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의견을 물어 반영한 것처럼 이번에도 초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계동 연세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통일은 당위성이 있는 이슈인 만큼 대박론에 휩쓸려 진행하기보다 야권 인사도 들어가 어떤 통일이 필요할지 치열하게 구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정책 보좌관 출신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야권을 비롯한 각계 인사를 참여시키되 병풍용이 아니라 일정한 역할과 권한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파격적으로 수석부위원장을 야권에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 과감한 정책수행도 주문하고 있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89년 8월 콜 총리가 헝가리 정부와 비밀교섭 끝에 차관 10억 마르크를 주기로 하고, 탈주 동독민의 강제 송환을 막은 일을 예로 들며 “독일 통일은 시대 변화가 준 선물일 뿐 아니라 서독 정부와 정치 지도자가 치밀한 준비를 해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기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는 “옛 서독에도 통일반대 세력이 많았으나 인적 교류를 통해 동독의 실상이 알려지고, 서독의 방송이 동독에서 전파를 타며 양쪽 모두에서 변화가 시작됐다”며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콜 총리처럼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곧바로 통일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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