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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규제'에 날아간 61조

중앙일보 2014.03.19 02:18 종합 1면 지면보기
17일 밤 각 부처는 분주했다. 해당 업무에서 손을 놓은 전임자마저 규제 개선 아이템을 캐묻는 전화에 시달렸을 정도다. 애초 대통령 보고에 포함된 내용이 너무 지엽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정부 관계자는 “규제개혁 장관회의가 17일에서 20일로 연기되면서 내용을 보완하느라 난리”라며 “기존에 하던 대로 규제 발굴·수용 사례와 수용률 위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낭패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목소리를 더 들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부랴부랴 발표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여러 번 밝혔지만 아직 공무원은 방향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며 “첫 회의가 이러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 투자 최대 걸림돌 … 내일 끝장토론 주목
"규제는 공무원 생명줄, 충격 줘야 풀려" DJ정부 교훈

 박 대통령이 ‘암 덩어리’라고 발언의 강도를 높인 규제개혁이 여전히 ‘손톱 밑 가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끝장 토론을 하자고 하는 이유다.



 우왕좌왕하는 규제개혁 실무의 해법은 유일하게 규제를 줄인(-6539건) 정권인 김대중(DJ) 정부의 ‘1998년 규제개혁 종합지침’에 들어 있다. 당시도 관료가 대통령의 의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30% 축소’를 골자로 한 지침 초안이 98년 4월 23일 차관회의를 통과할 때 일부에선 “너무 과도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닷새 후 국무회의에서 DJ는 이 안을 보류시켰다. 같은 해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안은 30% 감축을 ‘전면 재검토’로 수정했다. 각 부처에는 50%, 심지어 75% 감축 계획을 내야만 했다. 당시 DJ는 “규제 완화가 제대로 안 된 이유는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속성과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에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고위 공직자의 얘기다. “각 부처 기획조정실장은 자기 부처 규제 목록을 다 알지만, 취합을 할 때면 적당히 뽑아서 올린다. 심지어 골탕 먹이기용으로 절대 풀 수 없는 규제를 집어넣기도 한다.” 그는 규제를 포상·문책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 안 푸는 부처의 1급을 인사 조치하면, 규제개혁은 당장 속도를 낼 것”이라는 주장이다. 98년 지침에는 법적 근거 없이 규제를 하는 공무원에 대한 문책이 명문화돼 있다.



 세부적으론 속도전과 집중포화가 필요하다. DJ 때도 실질적 개선은 첫해에 모두 이뤄졌다. 무엇부터 바꿔야 할지도 98년 지침에 답이 있다.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1순위다. 갈라파고스는 남미의 섬으로, 외부와 단절돼 생물이 완전히 다르게 진화해 버린 곳이다.



DJ 지침도 첫 장에서 폐지해야 할 규제로 국제 규범과 다른 규제를 지목했다. 갈라파고스 규제는 국내 투자는 물론이고 외국 기업 투자도 내쫓는다. 수도권 규제가 대표적이다. 경기개발연구원은 수도권 규제를 과감하게 풀면 추가로 생기는 투자가 61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DJ 때 규제개혁을 총괄했던 정해주 전 국무조정실장은 “규제는 공무원의 생명줄 같은 것”이라며 “여러 부처가 얽힌 덩어리 규제는 이해 관계가 없는 외부 전문가그룹에 맡겨 집중적으로 풀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작용부터 생각하면 절대 규제를 풀 수 없고, 먼저 풀고 부작용을 보완하는 방식이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개혁 레이스에서 대통령과 공무원의 거리가 벌어지자 18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열정과 집념을 쏟아부어서 국민 삶을 반드시 개선하겠다는 각오로 온몸을 던져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지시처럼 될지, 20일 끝장 토론에 정부의 의지와 실력을 가늠해보려는 기업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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