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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기업에 3심제를 허하라

중앙일보 2014.03.19 00:53 종합 30면 지면보기

불복(不服)의 소(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소재지를 관할(管轄)하는 서울고등법원을 전속(專屬) 관할로 한다.



권석천
논설위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55조다. 법조인이 아니라면 법률 이름만 읽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것이다. 하지만 부러우면 지듯이 포기하면 이용당하는 거다. 견고해 보이는 법률용어들도 한 꺼풀 벗겨내면 바로 당신의 일, 당신이 다니는 회사의 일이다. 차근차근 Q&A로 풀어보자.



 -법조문이 ‘외계어’ 같다. 무슨 뜻인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서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같은 것을 맞았을 때 재판을 하려면 공정위가 있는 지역을 담당하는 서울고등법원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 조항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건가.



 “다시 한 번 읽어보라.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공정위 주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세종특별자치시 다솜3로 95’로 나온다. 정부청사 1단계 이전으로 2012년 12월 과천시에서 세종시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공정위를 상대로 재판을 하려면 ‘공정위 소재지’인 세종시 사건을 담당하는 대전고등법원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서울고등법원으로 가야 할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법은 불투명성을 싫어한다. 의원님들이 아무리 나랏일에 바빠도 법의 맹점을 방치해놓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 이상한 건 공정위다. 자기 부처와 직접 관련된 법에 문제가 생기면 손질을 해야 하는데 세종시 이전 후 1년3개월이 지날 때까지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법 개정안은 결국 제출되지 않은 상태인가.



 “좋은 질문이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 5일 국회에 법안을 냈다. 법조문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서울고등법원’을 들어내고 대신 ‘서울행정법원과 대전지방법원’을 넣자는 내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뭐가 어떻게 바뀌나.



 “공정거래사건도 세 번 재판받을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의 제안 이유는 ‘공정위 상대 소송도 일반 행정소송처럼 3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본도 최근(지난해 12월) 공정거래사건 소송을 2심제에서 3심제로 바꿨다’고 설명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공정위가 그동안 55조를 건드리지 않은 까닭도 3심제 논란에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공정위 입장은 무엇인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경제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공정위 전원회의가 사실상 1심 기능을 하고 있다. 현행 2심제도 소송 기간이 긴데 3심제로 바꾸면 기업 부담이 더 커지지 않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기업 부담? 기업들도 2심제를 원하나.



 “내가 아는 기업 임원에게 전화했더니 ‘공정위에서 배려해주는 건 고맙지만 우리야 당연히 한 번 더 재판할 기회 갖는 걸 원하지’라고 하던데…. 기업 부담이 우려된다면 설문 조사라도 실시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당신 생각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금은 기업이 판사들 앞에서 공정거래사건의 사실관계를 다툴 수 있는 기회가 고등법원, 한 번밖에 없다. (대법원에선 법률 적용의 잘잘못을 따진다.) 1998년 행정법원이 생긴 뒤 세금 사건을 비롯해 대부분의 행정소송이 3심제로 바뀌었다. 공정거래사건만 두 번 재판하는 건 원칙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과징금 징수 규모가 수천억원대로 늘어나는 등 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솔직히 답하라. 당신, 기업 편드는 거 아닌가.



 “기업 편드는 거 맞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 ‘갑(甲)질’ 하고 반칙하는 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세 번 재판받을 권리를 빼앗아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위해 ‘끝장 토론’ 연다는데, 정부 조치에 불복할 수 있는 방어권부터 제대로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공정거래는 정부와 기업 사이에도 적용돼야 하지 않겠나.”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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