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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자기 처 빼고 인심 잃어야 나라가 평화로운 법

중앙일보 2014.03.19 00:10 종합 27면 지면보기
한창때 술과 담배에 절어 살던 변무관 변호사는 40대 중반에 담배를, 10여 년 전엔 술을 끊었다. 검사 시절 즐겼던 골프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접었다. “온갖 잡놈(?)들이 다 모이는 골프장이 싫어서”라고 후배에게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검사를 그만두고 나니 골프 티업 시간이 원치 않게 점점 늦어지는 ‘현실’이 싫어서다. [김형수 기자]
“영국의 법언(法諺)에 ‘검사는 자기 처 외에는 인심을 잃어야 나라가 평화롭다’는 말이 있다. 법조계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이 말을 다시 한번 새겨보기를 바란다.”


자서전 낸 92세 변무관 변호사
강골 검사 30년, 변호사 30여 년
요즘도 매일 영어신문 읽고 공부

 검사 30년, 변호사 30여 년 경력의 변무관(92) 변호사가 후배 검사들에게 주는 고언이다. “법률 지상주의가 아니라 교양 깊은 검찰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그는 “고시에 합격했을 때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전부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끊임없이 교양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변 변호사는 『나는 역시 우직한 촌사람이었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고 19일 출판기념회를 한다.



 아흔 넘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자서전을 낸 그를 14일 광화문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책상에는 겉표지가 다 헤진 영어사전이 눈에 띄었다. 요즘도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일간지와 영어신문을 읽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에서 찾아 공부한다고 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하루 평균 50여 개 단어를 쓰고 읽었다. “한 달 25일 정도를 한다면, 한 달에 1200여 개, 1년에 1만4000여 단어를 외우는 셈이지요. 물론 까먹는 속도가 훨씬 빠르지만, 잊어버린 단어, 의미가 희미했던 단어를 더 확실하게 알게 될 때의 기쁨은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자서전 제목처럼 그는 1922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中央大) 전문부 법과를 졸업하고 52년 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검찰 요직인 서울지검 차장검사를 마치고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법무부 법무실장, 대구지검 검사장을 지냈다. 80년 대검 총무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나 81년 변호사를 시작했다.



검사 변무관은 ‘변 검사가 아닌 범 검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강골’이었다. 부산과 대구에서 근무하던 시절, 원칙대로 수사하는 그를 말리려 법무장관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적도 있다고 했다. 부산지검에서 근무할 때, 안 되는 것을 자꾸 검토하라는 검사장 지시에 반발, “당신이 직접 해보시오”라며 수사기록을 내던지기도 했다. 그는 “조직생활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젊은 시절 혈기를 누르지 못한 나의 한계였다. 그 후 ‘검사장에게 기록을 집어던진 검사’라는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을 뿐”이라고 했다.



 한 세기 가까이 살아온 만큼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일제시대 말기, 학도병으로 함께 끌려갔던 고(故) 박동진 전 외무장관을 비롯, 김재순 전 국회의장, 김영무 김앤장 법률사무소 대표, 주선회 전 대법관,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 백선엽 장군, 현경대 전 의원 등과 폭넓게 교유했다. 자서전에서 이들과의 사연이나 인물평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재순 전 의장은 “사람·술·책을 좋아하는 천생 정치가”, 현경대 전 의원에 대해선 “인사성 밝고 대인관계가 좋아 정치권에서도 잘 해낼 것”이라고 썼다.



신현확 전 경제기획원 장관과도 동빙고동 이웃사촌으로 친하게 지냈단다. 술 한잔 하고 같이 귀가하는데 신 전 부총리가 “변 변호사, 인생에서 제일 큰 어려움이 뭔줄 아시오?”라고 물었다. 미처 답을 못하는 사이 신 전 장관이 답했다. “고독이오.” 당시 신 전 부총리의 부인은 15년간 병으로 누워있다 작고한 상황이었다. 변 변호사는 “이제 나도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게 되니 신 부총리가 말한 ‘고독’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에게 젊은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물었다. 그는 “깍듯하게 존대하면서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라”고 했다. 변 변호사는 그의 사무실에서 변호사 시보를 거쳐간 함승희 변호사, 정종섭·박정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과 그의 호에서 이름을 딴 정석회(靜石會) 모임을 한다. 검사 시절 동료 모임인 ‘15인회’도 연 5~6회 한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정해창·정치근·배명인·박희태·최상엽·김두희·정성진 전 법무장관, 정구영·박순용·이명재 전 검찰총장 등이 멤버다. 변 변호사는 이들에게 농 삼아 “당신들은 다이아몬드라면 훔쳐가고 싶을 만큼 빛나는 존재들이니 조심하시오”라고 말하곤 한다.



 그의 건강비결은 일소오다(一少五多). 식사는 적게 하고, 많이 움직이고(多動), 많이 접촉하며(多接), 많이 배설하고(多泄), 많이 잊어버리며(多忘), 많이 쉰다(多休).



 변 변호사는 “애초부터 자서전을 염두에 두고 일기나 기록을 남겼더라면, 훨씬 더 정확하고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중언부언, 뒤죽박죽이긴 하나 이 글이 결국은 이 세상과의 이별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글=서경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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