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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설계자 정도전, 지금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2014.03.19 00:02 Week& 6면 지면보기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다. 이 드라마를 보며 고려 말, 조선 초 역사를 공부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증에 힘쓴 정통 사극이다. 실제 역사에서 인물 구도만 따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판타지 사극과는 노선을 달리한다. 고려말 사회 혼란의 원인을 정확히 꿰뚫어본 안목, 이성계라는 혁명 동지를 알아본 통찰력, 도덕적인 이상 사회를 구현했던 추진력 등 정도전의 매력은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정도전에 대한 교과서 서술을 살펴보고, 신문 기사를 통해 정도전에 대한 현대적 평가도 짚어보자.


[역사 NIE]③ 정도전

정도전(1342~1398)



고려 말기는 권문세족(權門勢族)이 득세하던 시기다. 경상도 봉화지역의 향리(지역 토착세력) 집안에서 태어난 정도전은 22세에 과거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지만 정국을 주도하던 권문세족과 충돌해 유배길에 오른다. 정치적 시련기를 맞은 그는 유배지에서 백성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사회 개혁을 꿈꾼다. 당시 권문세족은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며 왕보다 강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이 소유한 땅의 크기는 산과 하천을 경계로 삼아야 할 정도로 넓었지만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땅을 더 넓히기 위해 양민을 착취하고 노비로 만드는 전횡을 일삼았다. 정도전이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성리학의 위민(爲民·백성을 위함) 사상을 토대로 한 이상사회(조선)를 꿈꿨던 것은 고려말의 이런 부패 때문이다.



관련 인물: 이성계(1335~1408)



고려 기득권층인 권문세족은 나라 이익보다 개인의 치부에 힘을 쏟았다. 국고(國庫)는 비어가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는데 권문세족 곳간만 차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변화와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도전 머릿속에는 고려를 대체할 새로운 나라의 설계도가 완성돼 있었다. 설계도의 근본은 성리학이다. 당시 고려 국교였던 불교는 권문세족과 결탁해 광활한 토지를 소유하며 신분제 귀족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정도전은 성리학이 국가에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참된 학문이라 생각했다. “옛 사람들의 덕을 밝히고 국민을 새롭게 하는 실학(實學·실용적인 학문)”이라 부르기도 했다. 정도전처럼 성리학을 통해 고려 사회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했던 엘리트 문인들을 일컬어 신진사대부라 한다.



 이성계는 당시 고려에 자주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던 홍건적(중국 명나라의 농민 반란군)과 왜구(일본의 해적 집단)를 소탕하며 백성의 신임을 얻은 신흥무인 세력이다. 이성계와 함께 외적을 소탕한 최영 장군이 고려 명문가 후예였던 데 반해, 이성계는 원나라에서 성장한 변방 세력이었다. 고려 중앙 정부에 아무 연고도 없던 이성계는 치르는 전투마다 백전백승하며 ‘불패의 사나이’ ‘난세를 구할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새 나라 설계도를 갖고 있던 정도전은 군사력을 갖춘 이성계를 만나며 개국의 꿈을 현실화하기 시작한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중인 삼봉집
주요 사건: 과전법, 조선경국대전 편찬



모두 변화를 원해도 그 방법과 속도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신진사대부 사이에서도 고려 왕조를 유지하며 제도를 하나씩 개선 해나가자는 온건파가 있었다. 이색·정몽주가 대표적이다. 정도전의 생각은 달랐다. 권문세족이 틀어쥐고 있는 정치 권력과 토지를 빼앗지 않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 외엔 제대로 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품은 이들은 급진파라 불린다.



 정도전의 급진파가 정국을 주도하게 된 건 의외의 사건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에서는 ‘우왕의 요동정벌’에 대해 설명한다. 우왕이 곁에 두고 신임했던 두 신하가 이인임과 최영이다. 이인임은 권문세족의 한 사람으로 권력을 지나치게 사유화하고 토지를 확대해 민심을 잃었고, 새롭게 성장하는 중국의 명나라를 적대시하고 원나라를 가까이하는 등 비현실적인 외교를 했다. 당시 명나라는 고려에 많은 공물을 요구하면서 철령 이북 땅을 명(明)의 직속령으로 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이에 최영은 명이 차지한 요동지방까지 공략해 고구려 옛 땅을 회복하겠다며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



 최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이성계는 ‘4불가론’을 외치며 요동 정벌을 반대한다. ‘작은 나라(고려)가 큰 나라(명)를 거역해선 안된다’ ‘농번기인 여름에 출병은 불가하다’ ‘왜적 침입 우려가 있다’ ‘장마철에는 활의 아교가 녹고,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리베르스쿨과 지학사 교과서 두 권에서만 ‘4불가론’의 구체적 내용이 언급돼 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해선 안된다’는 내용 때문에 4불가론은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산물로 비난받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4불가론은 ‘시기적 적절성’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설명한다. 또 온갖 특혜를 누리는 권문세족 대신 출병해야 하는 백성의 불만을 대변한 것이란 평가도 있다.



 결국 이성계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출병한 이성계는 명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압록강 위화도에서 회군(1388년) 해 개경으로 진격한 뒤 최영을 죽이고, 우왕을 폐위한 다음 8살에 불과한 창왕을 왕위에 세우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다.



 권문세족의 기세가 여전하고, 신진사대부 사이에서도 온건파와 급진파가 나뉜 데다, 신흥무인 세력이 왕실을 장악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등 뒤숭숭한 시국의 무게중심은 일거에 정도전의 급진파에게 쏠리게 된다. 급진파가 토지 개혁 카드를 꺼낸 게 승부수였다. 권문세족 토지를 몰수해 백성에게 나눠주자는 거다. 토지 개혁안을 통해 급진파는 권문세족을 몰락시키는 동시에 농민 지지도 확보하고 새 나라를 건설할 경제적 기반까지 마련하게 된다.



 정도전이 내세운 토지 개혁안은 과전법이다. 과전이란 국가에서 관리에게 주는 토지를 의미한다. 토지 소유권을 주는 게 아니고 토지에서 세금을 걷는 수조권을 주는 방식이다. 모든 백성에게 토지를 나눠주겠다는 게 목표였지만 이루지는 못했다. 권문세족이 가진 토지문서를 빼앗아 불살라 버리고 국가에서 모든 토지를 소유한다는 게 주요 골자고, 많은 백성을 자영농으로 만들었다는 게 성과다.



 이성계가 정도전의 과전법을 받아들여 실행하면서 실질적인 왕으로 등극한다. 과전법 시행(1391년) 이듬해 허울만 남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1392년)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 4년 만이다.



 건국을 주도한 정도전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고 새로운 문물 제도를 정비하는 데 앞장선다. 리베르스쿨과 두산동아, 천재교육 교과서는 정도전이 직접 계획한 한양도성도를 실었다.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 종묘와 사직단 위치까지 섬세하게 설계한 한양도성도에는 조선을 유교 이상국으로 만들려 한 정도전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래엔 교과서에는 정도전이 편찬한 『조선경국대전』 한 대목을 소개한다. ‘재상은 임금의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일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가장 올바른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 한 사람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보다 재상을 통해 임금의 자질을 보완하는 게 백성에게 널리 이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도전의 이상은 ‘1차 왕자의 난’을 통해 미완으로 끝난다. 훗날 태종(조선 3대 임금)에 등극하는 이방원은 재상 중심 정치가 아닌 국왕 일인에 의한 강력한 통치 국가 수립을 원했다. 재상 중심 국가를 만들려던 정도전은 결국 이방원 손에 죽는다(1398년). 나라를 세운 지 6년 만이다.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정도전과 관련된 신문 기사 목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문에서 찾은 정도전



 신문이 정도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살았던 고려 말과 오늘날의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공통 키워드는 ‘양극화’다. 일부가 부를 독점하고 중산층이 몰락하며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날의 모습과 권문세족이 득세하던 고려말이 상당히 비슷하단 얘기다.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이 그 가치가 있다”(『삼봉집』)는 정도전 이야기를 옮기며, 강력한 관료 체제를 수립해 민생(民生) 문제 해결에 나섰던 혁명가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풀어주고 있다.(2014년 1월 30일자 15면 한국 양극화 고려말 닮아…600년 전 메시지 귀 기울여야)



 드라마 ‘정도전’ 인기를 분석한 기사에서도 ‘작금의 정치현실과 유사성’을 골자로 내세운다. 백성을 최우선 가치로 놓았던 정도전의 ‘민본(民本) 정치’ 이상이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진은 『삼봉집』 구절을 제작 노트에 인용했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하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2014년 1월 24일자 21면 지금 왜 정도전인가)



글=박형수 기자

자문=중동고 최미정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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