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체육 교과서 들여다 보니

이런 이견은 뒤로 하고 체육 교과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현재 출판된 13종 가운데 한 종을 살펴봤다. 총 567페이지, 건강·도전·경쟁·표현·여가 5개 영역으로 구성돼 있었다. 다른 체육 교과서 역시 비슷한 구성과 두께다.
건강 영역에서 스포츠 개념과 건강 관리의 기본을 설명한다. 도전·경쟁·표현·여가 영역에선 해당 영역에 속하는 각종 스포츠를 소개하고 있다. 육상 트랙·필드 경기와 수영·뜀틀·평균대·축구·농구·탁구·현대무용·댄스스포츠·발레·쇼트트랙·사격·양궁·발레·국궁·스키·트레킹·래프팅·서핑 등 59가지다. 짧게는 2~3쪽에서 많게는 15~16쪽까지 해당 스포츠의 전문용어와 경기장, 경기규칙은 물론 심판법까지 사진·삽화를 곁들여 상세하게 설명한다. 59가지 스포츠의 경기규칙을 설명하는 데 교과서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집필에 참여한 김모 교사는 “각 학교의 사정이 다르고 학생마다 관심갖는 스포츠가 다른데 일부 종목만 다룰 수는 없다”며 “시를 읽고 시인을 꿈꾸는 학생이 있듯 다양한 스포츠를 소개하는 게 교과서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 체육교사는 “시설 문제 등으로 육상·축구·농구·탁구·킨볼·넷볼 등 15가지 안팎을 한 학기에 2~3종씩 나눠 배운다”며 “교과서에 백화점 진열하듯 모든 종목을 왜 우겨넣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대부분 “스포츠를 글로 배운다고 관심이 생기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교과서의 필요 여부를 떠나 교과서가 지엽적인 경기규칙 소개에만 얽매여 있는 것도 문제라는 얘기다.

실제로 교과서에서 다트를 던질 때는 앞쪽 발에 체중의 80%를 실어야 한다며 사진까지 여러 장 싣고 있다. 쇼트트랙 선수가 코너를 돌 때 스케이트 날의 각도도 나온다. 마치 중학교 학생들이 스케이트 날 각도나 야구의 직구·커브·슬라이드·체인지업 투구법을 알아야 해당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묻어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 체육교사는 “아이들은 시범을 보거나 쉬운 동작을 해보면서 경기방법과 규칙을 몸으로 익히지 글로 배우지 않는다”며 “직접 운동을 하면서 리더십·협동심·사회성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몸으로 배우는 게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체육 교육 강국으로 알려진 독일은 초등학교와 중·고교 과정의 김나지움 모두 아예 체육 교과서가 없다.

수영은 모든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배우고, 교사는 재량껏 육상·농구·축구·테니스 등 한 학기에 2~3종목을 정해 가르친다. 이론 수업은 아예 없다. 독일 빌레펠트(Bielefeld)시에 있는 김나지움에 다니는 자녀를 둔 정수정(42)씨는 “독일에선 교사가 체육 수업에 필요한 간단한 자료를 주긴 해도 경기 규칙을 외우게 한다거나 지필고사를 보는 일은 없다”며 “학생이 체육관에서 몸을 움직이게 하고 원하는 운동을 마음껏 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평가는 100% 실기다. 실기 평가 역시 한국의 평가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정씨는 “1~5(1이 최고점)등급으로 평가하는데 운동능력이 떨어져도 노력과 향상도를 따져 2등급까진 성적을 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운동신경이 떨어져 달리기를 못하는 학생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처음보다 실력이 향상됐다면 실제 기록은 많이 뒤쳐져도 2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대학입학시험인 A레벨에서 체육대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을 제외하곤 일반 중·고교엔 체육 교과서가 없다. 영국 초등 사립학교인 엘스트리 스쿨(Elstree School)의 제임스 모리스 교사는 “공·사립 모두 일반적인 체육 과목은 학생들의 운동 능력 신장에 목표를 둔다”고 말했다. 학기 초 개별 학생마다 체력 측정을 하고 학생마다 한 학기 동안 목표해야 할 목표치를 정한다. 예컨대 수영 25m, 오래 달리기 1㎞ 등이다. 이런 기준은 학생의 체력에 따라 조정하기도 한다. 모리스 교사는 “학기 동안 꾸준하게 기록을 측정해 체력 향상을 점검하고 노력과 향상도를 더해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외엔 체육 교과서가 필요 없다”고 했다.
정현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