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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카레이서·사진가·교수 … 난, 끝없이 꿈꾼다

중앙일보 2014.03.19 00:01 강남통신 8면 지면보기


조민기(49). 서울 서라벌고에 다니던 1982년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으니, 벌써 경력 33년차 배우다. 그간 출연한 드라마가 49개, 영화가 11개다. 결코 과작(寡作)은 아닌데 여기에 몇 가지 타이틀이 더 붙는다. 전직 자동차 레이서이자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사진작가, 그리고 교수 말이다. 모교인 충북 청주대에서 연극학과 학과장을 맡아 일주일에 최소 나흘 이상 학교에 나온다는 그를 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연구실엔 카페를 연상시키는 가구며 소품이 가득 차 있었다. 벽엔 쿠바의 해변 사진과 학과 학생들 단체 사진이 걸려 있고. 그가 찍은 거다. “학교에서 준 가구는 하나도 없다. 책상은 내가 설계했고, 나무판은 중국에서 수십 년 쓰던 대문이다. 여기 검은색 흑단 소파는 베트남 여행 중에 사온 거고.” 주말 드라마 ‘황금 무지개’를 찍는 와중에 대체 어떻게 짬을 내 강의까지 하는지. 게다가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사는 행복한 중년이 외모마저 20~30대 같은 늘씬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년이 더 매력적인 남자 조민기



조민기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의 연구실엔 그의 취향을 보여주는 소품이 가득하다. 마룻바닥·책상·책꽂이는 그가 디자인했고, 벽면 사진작품은 그가 찍었다.


-드리마 촬영과 학과장 병행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서울에서 촬영하고 곧바로 청주 와서 강의하고, 또 밤에 다시 서울 가서 촬영 할 때가 많다. 수업뿐만이 아니다. 연극과라 매 학기 학생들이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연습할 때 수시로 봐줘야 한다. 지방 촬영 가는 길에 들러 학생들 지도하고 이동하면서 차에서 잔다. 물론 쉽진 않다. 2006년 중앙대에서 석사 학위 받을 때도 비슷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찍은 해다. 얼마나 바빴겠나.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 논문 안 쓰면 다음엔 더 바빠서 못 쓸 것’이라 하기에 정말 힘겹게 썼다. 그런데 그게 되더라.”



 (※연기와 강의, 사진 활동까지 하는 그의 철학은 역설적으로 ‘단순하게 살자. 하면 된다’다. )



 -왜 그렇게까지 강의를 하나. 교직이 대체 어떤 의미이길래.



 “분갈이를 떠올려봐라. 오래 방치된 화분은 깨져도 흙이 안 흘러내린다. 단단히 굳어서다. 기성세대도 그렇다. 자기가 딱딱하게 굳었다는 것도 모른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싶을 때가 많다. 내가 배우로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를 학생들에게 많이 받는다. “



오일뱅크팀 소속 카레이 서로 활동하던 시절.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 사는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참 많이 누리고 있구나 생각한다.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들보다 배우인 사람이 적고, 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보다 교수인 사람이 적다. 사진 스튜디오를 갖고 싶은 사람보다 갖고 있는 사람이 더 적다. 그런데 난 이걸 가졌으니 감사할 일이다. 후배 배우 이세창의 권유로 97~2000년 프로레이싱을 했다. 한때 자동차를 7대까지 소유할 정도로 자동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제일 좋한 차는 하얀색 롤스로이스다. 카 시트에 소 일곱 마리 가죽이 들어가고, 바닥 매트는 양털이었다. 이걸 계기로 자동차를 다룬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또래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내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더 본질적인 건 남자들 중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 아닐까. 3일 동안 직장· 가족 전혀 신경 안 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줘봐라. 3일을 채울 수 있는 남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내 또래 남자뿐 아니라 이 시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고 싶어 하는 게 없다는 것 같다.”



가족 사진. 왼쪽부터 딸, 조민기 부부, 아들.
 -하고 싶은 일이라…. 아이들 하고 싶은 일 하며 살 수 있게 키웠는지 궁금하다.



 “큰애가 서울의 한 외고에 막 입학했을 때다. 큰애 학교 친구들에게 “나중에 대학에서 뭘 전공할 거냐’ 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한결같이 ‘수능 점수 나오는 거 봐서’였다. 어른·아이를 떠나 꿈을 꾸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우리 어릴 적에 누구나 꿈이 있었다. 유치할지 몰라도 ‘나 대통령 될 거야’ ‘장군 될 거야’ 같은 것 말이다. 꿈을 위해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다들 꿈은 컸다. 그런데 이제 꿈이 없어졌다. 세상에 대한 희망, 시대에 대한 희망, 타인에 대한 희망,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희망이 결여된 시대가 돼 버렸다. 아이들을 중국 국제학교에 유학 보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내(매이크업 아티스트 김선진)가 먼저 제안했는데 고민 끝에 동의했다. 그 길이 아이들에게 꿈을 찾게 해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유학보내면서 애들한테 딱 한가지만 주문했다.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이고, 그게 전공이 되고 직업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인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



 “청소년 시절부터 ‘독하게’ 내 꿈을 좇았다. 보수적이던 아버지는 예술고 진학을 반대했다. 예고 입학원서를 찢어 버릴 정도였다. 인문계고에 안 가려고 고입 연합 고사 정답을 일부러 틀리게 적어 재수를 자처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재수 후에도 예술고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할수없이 인문계고인 서라벌고에 들어갔다. 하지만 입학하자마자 학교 연극반에 들었고, 극단 신협에도 들어갔다. 당시 큰아버지가 단원으로 활동 중이라 가능했다. 좀 다른 얘기지만 큰아버지 아들, 그러니까 사촌이 배우 조형기다.”



 -지금 출연하는 드라마도 그렇고 근래에 주로 악역을 맡는데.



 “한때 달달한 로맨스 멜로의 주인공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격이 강한 역할이 들어온다.”



 -본인 외모에서 악역 이미지가 풍기기 때문일까.



 “맞다. 내 외모에 그런 분위기가 있다. 주변에서 가끔 독한 인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하하. 그런데 난 이런 내 얼굴이 좋다. 동전의 양면 같은 캐릭터 아닌가. 왜 내게 극악스러운 배역만 들어올까 생각해봤다. 나이 오십이 되니 드라마에서 당연히 어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어른들’이란 존재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속 ‘어른’은 주위와 차단되고 가족을 등한시하고 성공을 위해 성공을 꿈꾸는 인물들이다. 이전 드라마 속 어른들은 달랐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아쉽다. 허허허 웃어주는 아저씨 같은 ‘전원일기’ 속 김 회장님(최불암 분), 그리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수사반장 형사 같은 어른들이 이제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



 “형 같은 사람이 돼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자랄 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진정한 남자는 후배와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람 아닐까. 반 걸음 뒤에서 어깨동무 해주며 지친 어깨를 끄집어 올려 적당한 힘으로 밀어줄 수 있는 게 진짜 남자라고 생각한다.”



 -후배들과 소통을 잘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수직적 관계를 싫어한다. 우린 ‘몇년 생이냐’를 너무 따진다. 그게 우리를 망친다. 후배를 따지는 기준이 뭐냐. 나이나 경력이다. 그런데 열살짜리 아역 배우가 마흔 먹은 기성배우보다 연기를 더 잘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서면 나이에 관계 없이 같이 한 작품을 만드는 동료일 뿐이라 생각한다. ‘넌 나보다 후배니까 내가 하라는대로 해!’ 하는 건 정말 근거 없는 폭력이다. 하지만 후배가 ‘선배님은 뭐에요! 연기도 못 하는데’ 하면 교만이다. 학생들에게 ‘똑똑한 사람이 되지 말고 현명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학생들더러 너희가 말하기 전에 더 많이 들어야 한다고 해준다.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연기다. 액션(연기)은 곧 리액션(반응)이다.”



 -배우로서 몸 관리를 어떻게 하나.



 “촬영이 없는 날엔 하루 4,5시간씩 운동을 한다. 아내 표현대로 ‘올림픽 나가듯’ 운동 한다. 나 스스로 몸이 둔해지는 게 싫어서다. 편한 옷보단 멋있는 옷이 좋다. 옷장에 걸려 있는 양복이 10년 후에도 내게 잘 맞으면 좋겠다. 자신감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는 거다. 내일을 위해 난 아직 벨트를 느슨하게 풀고 않으려 한다.”



연극학과 학생들과 함께. 그는 ‘어깨동무 해주는 형 같은 교수’를 지향한다.
배우가 되려는 청소년에게 주는 조언

성형할 돈으로 여행 가세요 … 세상에 대한 관심, 연기폭 넓혀줘




배우는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다. 연기 전공 학과가 있는 대학(전문대 포함)이 전국에 70여 개가 넘는다. “잘 생겼다”“예쁘다” 소리를 드는 청소년이라면 한번쯤 배우를 꿈꾼다.



 청주대 연극학과 학과장이기도 한 조민기는 “예쁘고 잘 생긴 사람만 배우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꼭 그렇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예쁘고 잘 생겼다고 연기를 더 잘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그런 외모가 배우가 되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좋은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선 그게 본질은 아니다”고 했다.



 “한국 청소년들은 ‘상대평가’에 익숙해요. 친구와 자기를 비교하면서 자기만의 멋과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내가 가진 것, 그리고 내가 가져야 할 것에 대한 준비 사이에서 자신을 ‘절대평가’하는 시선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는 성형 수술을 고민 하는 연기 지망생에게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여행을 가라”고 권한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그럼 외모보다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배우가 돼야 하는 걸까.



 그는 “궁극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연기 관련 학과 수험생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수험생이 잘 하면 얼마나 잘 하고 못 하면 또 얼마나 못 하겠느냐”며 “나는 면접 볼 때도 지금 당장 연기를 잘 하는 학생보다 앞으로 잘 할 수 있는 학생을 뽑는다”고 말했다.



 연기를 잘 하는 게 아니라 잘 할 수 있다는 건 뭘까. 그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라고 표현한다.



 “연기는 단지 기량이 아니에요.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세상 사람 얘기를 품을 수 있는 가슴이 있어야 해요.”



 연기 테크닉을 쌓으려 노력하기보다 ‘되도록 많이 보고 많이 느끼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가 아닌 스타만을 꿈꾸는 수험생에겐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배우란 외롭고 힘든 직업이에요. 산 정상만 보지 말고 넓은 산허리를 볼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하기 힘들어요.”



 그는 기획사 오디션에도 부정적이다.



 “기획사가 배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배우가 배우를 만드는 거예요. 결국 스타를 꿈꾸느냐, 배우를 꿈꾸느냐의 문제겠죠. 배우다움을 감내할 가슴이 있어야 나중에 스타도 될 수 있어요.”



글=성시윤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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