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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내 남편의 아킬레스건

온라인 중앙일보 2014.03.18 09:29
일러스트=강일구
<제27화>



‘삶이란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조지 버나드 쇼)



또 전화를 안 받는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다고 내가 가만있을 줄 아나. 집에 들어앉아 살림만 한다고 우숩게 본 게 잘못이다. 당신을 옭아맬 방법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거기 청문관 실이죠? 상담을 좀 받고 싶은데요.”



내 남편은 경찰이다. 공무원이란 이야기다. 공무원인 남편을 괴롭히는 방법은 딱 하나가 있다. 청문감사실에 전화를 걸어 남편의 비위 사실을 털어놓으면 된다. “남편 앞길을 막는 일을 왜 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가 얼마나 한이 맺히면 이렇게 하겠는가.



남편을 만난 건 십여년 전 일이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나는 우연히 남편을 만났다. 경찰공무원인 남편은 듬직했고 우리는 곧 사랑에 빠졌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경찰의 아내로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툭하면 사건이 터졌고, 남편은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설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밤새도록 뉴스를 틀어놓은 적도 있었다. 외박도 많고 출장도 잦았다. 밤새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이 측은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남편의 불규칙한 생활이 길어지면서, 점차 지쳐갔다.



신기한 것은 남편은 바쁜 와중에서도 취미생활을 꼬박꼬박 챙긴다는 거였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는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을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애들 유치원 입학식은 안 가도 동호회 모임엔 갔다. 주말에 쉬게 되면 산엘 올랐다. 한번쯤은 아이를 데리고 집근처 낮은 산이라도 갈 수 있을텐데, 굳이 “동료들과” 멀리 있는 산을 찾았다.



경찰의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남들은 “공무원 남편을 둬서 좋겠다”고 했지만, 살림살이는 빠듯했다. 큰 아이가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부업을 해야 했다. 우유 배달, 학교 급식 도우미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푼돈 벌이를 했다. 게다가 늦깎이로 가진 둘째 때문에 살림은 더 빠듯했다. 큰 아이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둘째는 한시도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늦둥이 둘째까지 생기면 가정에 좀 충실해야 하는데, 남편은 취미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했다.



#여자에겐 감이 있다



뭔가 이상했다. 배드민턴 동호회엔 남편만 나가는 게 아니다. 거기엔 여자 회원도 있잖은가. 남편은 동호회 회원 중 한 명과 특히 친하게 지냈다. “어떤 사이냐”고 다그쳐 묻기도 했지만 남편은 “신경쓸 거 없다. 그냥 회원”이라며 성을 냈다.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수상했다. “경찰이 다 그렇지, 집에 꼬박꼬박 일찍 들어가는 경찰이 어딨냐”고 윽박지르는 남편이 괘씸했다.



남편의 일터 근처의 지구대를 찾아갔다. 다짜고짜 “우리 남편이 가정에 소홀해서 걱정이다. 전날 밤엔 집에 안왔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지구대에 이야기를 넣어놨으니 남편 귀에 들어가는 건 금방일 터였다. 지구대에서 나와 은행에 들러 남편 월급통장에서 돈을 뺐다. 그날 저녁 남편은 예상대로 집에 일찌감치 들어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소리를 질렀지만 남편이 예상대로 집에 들어오니 통쾌했다. 다음날 남편은 신용카드를 정지시켰다. 여기에 굴할 내가 아니었다. 이번엔 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집에 안 들어와서 걱정이다.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의 경찰 신고



극도로 화가 난 남편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주말, 남편은 등산을 갔다. 밤 늦은 시간 술에 취해 들어온 그를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누군들 등산 갈 줄을 몰라 집에 있는 줄 아느냐, 집을 좀 지켜라”며 드잡이를 했다. 싸움은 점차 격해졌고, 새벽이 되도록 고성이 오갔다. 남편이 내 멱살을 잡자, 이를 본 아이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서까지 불려간 우리 부부는 조서라는 걸 쓰고서야 풀려났다. 혐의는 폭행이었다. 서로 몇 대 치고받는 싸움이었으니, 두 사람 다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검찰에서 남편은 “아내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남편이 발로 내 가슴팍을 찬 부분은 인정되지 않았다.



남편이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되자 ‘가정불화’가 그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경찰서에선 그를 한직으로 발령을 냈다. 인사조치까지 당했지만 그는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난 다시 경찰서를 찾아갔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 데다, 외도하는 것 같다고 또 다시 상담을 받았다. 몇 주 뒤엔 경찰 서장실까지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서장실에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고선 짐을 쌌다. 남편이 휴직신청을 하기까지 나는 몇차례 경찰청을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 나 혼자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남편의 이혼 소송



참다 못한 남편은 소송을 냈다. “아내가 이유 없이 외도를 의심하고, 감사실에 전화를 거는 통에 직장생활도 어렵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부부관계가 끝난 것은 남편 때문”이라며 반발했다. 이혼을 원하진 않았지만, 남편을 만나려들진 않았다.



서울가정법원은 “부부갈등이 직장생활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는 데다, 아이들마저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을 정도로 고통받고 있다”며 “혼인생활을 강제한다면 남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혼인 생활 중 장애가 되는 여러 사태에 직면하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봤다.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의심했다면, 남편이 의심을 없앨만한 설득을 했어야 했지만 ‘의부증’이라고 치부하며 외면했다는 것이었다. 아내 역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직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부부가 자신의 생활태도와 입장을 고수해 부부갈등이 악화됐다”며 “파탄의 책임이 남편와 아내 모두에게 있다”고 선고했다. 아내는 재판에서 “남편이 외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남편이 사용하고 있는 통신사에 사실조회를 했지만 외도를 인정할 만한 근거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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