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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김정은을 움직이는 두 여인

중앙일보 2014.03.14 00:28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영종
정치부문 차장
은둔을 강요받던 평양 로열패밀리 여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베일 속에 머물렀지만 이젠 아니다. 요즘 눈길을 끄는 건 최고권력자 김정은의 가장 가까운 곳을 지키는 두 여자다. 여동생 김여정과 부인 이설주. 25세 동갑내기는 그 어떤 파워엘리트보다 강한 영향력을 발산한다. 여정은 오빠를 든든한 배경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드러낸다. 매력적인 음색에 미모를 겸비한 가수 이설주는 후계자 시절 김정은을 단숨에 사로잡아 퍼스트레이디에 올랐다.



 두 사람의 등장은 극적이다.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해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킨 뒤 이름을 알리며 화려한 데뷔를 하는 방식이다. 김여정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 때 모습을 보였다. 검은 상복 차림에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울보 소녀’로 각인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9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투표장에 나온 김정은을 수행한 여정의 이름을 관영매체들은 처음 알렸다. ‘노동당 중앙위 책임일꾼(간부)’이란 직함은 향후 그녀가 권력 전면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다.













 이설주는 평양의 신데렐라 같았다. 2012년 7월 초 김정은의 공연 관람 때 바로 옆자리를 지킨 그녀는 서방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같은 달 말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식에 김정은과 함께 나온 그녀를 북한 매체들은 ‘부인 이설주 동지’로 소개했다. 궁금증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을 택해 공개한 것이다. 공개석상에서 김정은의 팔짱을 낀 모습은 파격이었다. 고급 커플시계와 명품백, 헤어스타일까지 모든 게 관심거리였다. 김정은과 당·정·군 간부 모두가 착용하는 ‘초상휘장’(김일성·김정일 사진이 든 배지)을 이설주만 왜 달지 않는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할 정도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가 생전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다.



 시누이 김여정과 올케 이설주는 해외 유학파란 공통점이 있다. 외부 세계를 경험하고 바깥에서 평양을 들여다봤다는 말이다. 집권 3년차 최고지도자의 행보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궤도 이탈인지 아닌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후견 역할을 해 온 고모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의 처형을 계기로 정치 전면에서 사라진 시점에 두 여성의 역할은 더 긴요하다. 잔혹한 숙청의 피바람이 휩쓸고 간 평양 권력 핵심부에는 이제 최고지도자를 인도할 제대로 된 나침반이 없기 때문이다.



 김여정·이설주의 이름 뒤에는 ‘동지’라는 호칭이 붙는다. 하지만 절대권력자 김정은과 코드 맞추기만 신경 쓰는 동지는 곤란하다. 후광을 업고 누리려고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특권층을 위한 스키장과 골프·승마시설에 치중하는 리더십 때문에 벼랑에 선 민생을 챙기라는 쓴소리가 나와야 한다. ‘비판적 동지’로 남아 달라는 주문이다. 서른 살 혈기 때문에 좌충우돌하는 오빠 김정은, 남편 김정은에게 귀엣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그녀들뿐이다.



이영종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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