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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 사주고 7년간 염전노예

중앙일보 2014.03.12 00:51 종합 12면 지면보기
추위가 가시지 않은 2007년 초 전남 목포시의 한 식당. 한모(58)씨는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있었다. 식당엔 전남 신안군에서 염전을 운영하는 박모(58)씨도 있었다. 한씨의 허름한 옷차림과 어눌한 말투를 유심히 보던 박씨는 한씨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국밥값을 내주며 “돈을 벌게 해줄 테니 우리 집에 가자”는 제안을 받은 한씨는 그 길로 박씨를 따라나섰다.


경찰, 염전주인·소개업자 3명 구속
속아서 끌려온 피해자 22명 구출
15개 섬 경찰관 74명 인사 조치

이후 한씨는 지난달까지 7년간 박씨 염전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월급은 거의 받지 못한 채 일을 못하면 박씨에게 매를 맞았다. 신안군 의회 부의장인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주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박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청은 11일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을 계기로 지난달부터 벌여온 사회적 약자 인권침해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찾은 피해자 22명 중 6명이 이런 방식으로 염전 등에 끌려왔다. 경찰 관계자는 “업주들은 한씨처럼 지적 능력이 떨어진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유혹했다”고 말했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직업소개소 등에 속아 일터로 끌려갔다. 경찰은 피해자들을 가족 또는 보호시설로 보냈다.



 경찰 조사를 통해 적발된 염전 업주와 알선 브로커는 26명이다. 경찰은 이 중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감금 및 폭행을 가한 신안군 염전주 홍모(56)씨 등 3명을 구속했다. 피해자들을 꼬드겨 업주에게 넘긴 소개업자 고모(69)씨 등 3명에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해자들 근로기간은 대부분 2~5년이었지만 10년 이상 일한 이도 4명이나 됐다. 전남 영광군에서 일했던 지적장애인 김모(45)씨는 무려 15년 동안 일을 해왔다. 체불임금 액수는 5000만~1억원이 다수였다. 업주들은 밀린 임금 외에도 피해자들이 받은 장애수당이나 교통사고 합의금도 착복했다.



경찰은 업주들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마을주민과 피해자 동료 근로자들의 진술을 듣고 장애·심리 전문가를 참여시켜 피해자 진술을 이끌어냈다.



김헌기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은 “피해자들은 염전 등에서 강제노역 외에도 농사일, 집안 허드렛일과 얼차려까지도 거의 반항 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많은 피해자가 지적장애를 앓는 가운데 섬이라는 폐쇄된 곳에서 억압적인 환경에 익숙해지며 정상적 피해인식조차 못 가진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이번 노예사건이 처음 알려진 전남 신의도 신의파출소 등 목포지역 경찰에 대해 감찰한 결과 업주와의 유착 사례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관리소홀 책임을 물어 신의파출소 등 목포경찰서 관할 15개 섬 파출소 경찰관 74명을 인사 조치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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