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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중앙일보 2014.03.12 00:01 강남통신 12면 지면보기


뮤지컬 ‘글루미 데이’는 20세기초 경성(서울)을 충격에 빠뜨렸던 스캔들, 그러니까 바로 윤심덕과 김우진의 투신 자살을 다룬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였던 윤심덕과 극작가였던 김우진은 시모노세키 행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다 바다로 함께 뛰어들었다. 유명인인데다 사랑 때문에 벌인 도피였기 때문에 세상을 놀래켰다.

배우 이석준의 이 무대: 뮤지컬 '글루미 데이'



 1990년대 윤석화가 윤심덕을 맡아 열연한 연극 ‘사의 찬미’는 이들의 이야기다. 공연 전 나는 이 작품이 얼마나 ‘사의 찬미’의 매력을 이어갈 지가 관건이라고 봤다. 명성에 짓눌리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커튼을 걷고 나타난 ‘글루미 데이’는 내 뒷통수를 ‘탁’하고 쳤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이 현해탄에 몸을 던지지 않았다는 가설을 토대로 펼쳐진다. 전혀 다른 이야기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즉 둘은 밤바다에 현해탄에 뛰어내린 적이 없다는 거다. 아니,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들었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비극적 로맨스는 뭐란 말인가. 실제로도 둘의 죽음은 확인된 바가 없다. 물론 당시 주요 신문에 보도되긴 했지만 유서는 물론 이들의 최후를 목격한 사람은 없다. 심지어 나중에는 이 둘을 유럽에서 목격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작품은 배 안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5시간을 회고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단순히 흥미로운 가설을 들고 나온 것을 칭찬하려는 게 아니다. ‘글루미 데이’는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음악이다. 피아노·첼로·바이올린의 실내악으로만 짜여진 선율은 대단히 고급스러우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다. 당시 경성 멋쟁이들이 입었던 감각적인 복장과 스토리가 음악과 제대로 맞물리는 소위 ‘싱크로율’이 좋은 데다 공연장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끌고 간다.



 임강희·곽선영·안유진 등 출연배우들은 대학로에서는 ‘핫’하지만 아직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다 그런데도 요즘 이 작품이 입소문을 타고 창작뮤지컬 중에서는 굉장히 잘 나간다. 실제로 보니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 호흡과 조합이 배우인 내가 봐도 부러울 정도다.



 간혹 40대 이상 중년 관객 중엔 ‘맘마미아’처럼 관객이 흥겹게 박수치고 노래도 따라불러야 ‘티켓값’ 뽑았다며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번 기회에 발상을 전환해 클래식처럼 묵직하고 탄탄한 작품을 한 번 만나보면 어떨까.



연극 배우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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