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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미워도 … 도호쿠에 따뜻한 위로를

중앙일보 2014.03.11 01:49 종합 10면 지면보기
9일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 다카타(高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3·11 동일본 대지진 3주년 추도식에서 어린이가 기도하고 있다. 3년 전 바닷가 7만 그루 소나무 중 유일하게 한 그루가 살아남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 곳에선 이와테현 내에서 가장 많은 1771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사진 지지통신]


김현기
도쿄특파원
일요일인 9일 일본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에는 1896개의 연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현장에서]
"베풀고 살겠다"는 고교 졸업생
아내 시신 찾으려 잠수하는 남편
후쿠시마 사람들에게서 희망 배워



 리쿠젠타카타시와 인근 오후나토(大船渡)시에서 3년 전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희생자들의 숫자였다. 연을 날리는 생존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같은 동네 다카타 고교. 3년 전 22명의 학생, 1명의 교사가 희생당했다. 간이 천막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의 송별사에 전교생이 눈물바다가 됐다. “3년 전 우리가 입학식을 올리기 바로 한 달 전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학교가 무너져 입학식도 제때 치르지 못했죠. 하지만 세월이 지나 우리는 이렇게 졸업을 합니다. 폐허가 된 마을을 보며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3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께 받은 도움과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이제 우리 힘으로 일어서겠습니다.”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의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3년 전 피난한 공설체육관 바닥에서 “배급 식량을 보내준 전국, 전 세계 여러분 감사합니다”를 외쳤던 곤노 기요미(金野聖實·17)는 “봄부터는 전문학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환하게 웃었다. 스가하라 치하루(菅原千春·17)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베풀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날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후타바마치(雙葉町)에서 이곳으로 피난 와 있는 주민 100여 명의 합동위령식이 열렸다. 유족 대표로 인사말에 나선 다나카 유카리(田中友香理·27)는 무대에 마련된 제단을 향해 쓰나미로 아버지를 잃은 뒤의 3년을 되돌이켰다. “3·11 대지진은 나에게 가슴 쓰리고 슬픈 기억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끙끙 앓으면 하늘에 계신 아빠만 더 슬퍼하실 거예요. 아빠, 저 이제는 기운을 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게요.”



 일본에는 저마다의 3·11 추억과 아픔이 있다. 아침 먹고 나간 배우자를 청천벽력처럼 잃었고, 신나게 인사하고 학교 간 아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눈물로 번진 일기장에 그 기억을 담아 온 이들도 있고,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지는 이들도 있다. 실종된 아내의 시신이라도 집으로 데려오겠다며 잠수사 자격증을 따고 15kg 산소통을 멘 채 차디찬 겨울 바다로 잠수하는 50대 가장도 있다.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는 실종자를 포함해 1만8520명. 아직도 27만 명이 가설 주택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자살자 수도 3000명에 달한다. 지난달 말 특집취재를 위해 방문한 후쿠시마현 어민들의 모습에서 궁금했던 건 “어떻게 이리 슬픔을 속으로 삼키며 희망을 품고 갈 수 있을까”란 것이었다. 제대로 복구를 이뤄내지 못하는 정부를 탓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존경스럽다. 과거사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어도, 긍정적 태도로 묵묵히 역경을 이겨내는 도호쿠(東北) 주민들에게는 아낌없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김현기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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