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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만사여통'

중앙일보 2014.03.11 01:48 종합 10면 지면보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왼쪽)이 9일 최고인민회의 투표장인 평양 김일성정치대학을 나서고 있다. 여동생 여정(원 안)이 수행했다. 김정은 바로 뒤는 최용해 북한군 총정치국장.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이 코트를 벗어 바로 옆 젊은 여성에게 건넸다. 비서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오빠를 그림자 수행하는 여동생 여정이라 놀랐다.” 평양을 방문해 권력 핵심층과 접촉한 교포사업가는 김여정(25)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군부와 노동당 간부에게 깍듯이 존대하며 인사를 건네는 태도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표정은 밝고 자신만만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여정 동지 통해야 모든 일 해결"
38년 전 김경희처럼 권력 데뷔

 김여정이 베일을 벗었다. 9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투표장에서 김정은(30) 국방위 제1위원장을 수행하면서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이날 밤 조선중앙TV와 10일자 노동신문은 그를 처음으로 호명했다. 노동당의 실세인 김경옥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황병서 부부장에 이어 김여정을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라고 밝혔다. 김여정이 차관급 공직을 맡았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앞서 몇 차례 관영매체에 등장했다. 2012년 11월에는 고모인 김경희와 말을 타는 모습이 관영TV에 보였다. 김여정이 김정은과 함께 김일성·김정일의 핏줄을 잇는 이른바 ‘백두혈통’ 패밀리란 점을 부각하려는 선전술이었다.



 거침없는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 추도행사 때는 꼿꼿이 도열한 김정은과 당 간부들과 달리 행사장을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드러났다. 2012년 7월 능라인민유원지 개관 행사에서는 김정은이 경례받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여정은 오빠 김정은과 함께 1990년대 중반부터 수년간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 유학했다. 부모와 떨어져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김정은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게 우리 당국의 파악이다. 최고권력자가 된 오빠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김여정은 ‘예정’이란 이름을 쓰며 선전선동부 과장 직함으로 일해 왔다는 게 정보기관 관계자의 전언이다. 미 프로농구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도 김여정이 기획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간부들 사이에선 “모든 일은 여정 동지를 통해야 해결된다”는 말까지 돌 정도라고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런 김여정이 권력 핵심에 데뷔하자 사실상 김정은 권력의 2인자로 자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이던 76년 10월 여동생 김경희가 당 국제부 부부장으로 등장한 것에 견주기도 한다. 장성택 처형 이후 칩거에 들어간 김경희의 자리를 메우려 김여정이 예상보다 빨리 등판했다는 관측도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여정에 대한 고위 공직 부여가 향후 권력 내 세대교체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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