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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 1주년 … 버스 타고 기도하러 간 교황

중앙일보 2014.03.11 01:10 종합 18면 지면보기
바티칸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9일 로마 남부 소도시 아리차의 교회에서 피정(종교적 수련)을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을 공개했다. 피정 장소에서 교황이 추기경과 주교들 사이에 일행 가운데 한 사람처럼 앉아 있다. 그리스도 앞에서 교황도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그의 종교적 지향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교황은 오는 13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로마 AP=뉴시스]


“기도할 때 나와 교황청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해달라.”

프란치스코 파격 행보 1년
기념식 대신 피정의 집 찾아가
가난한 자의 친구로 세계적 인기
일부선 "성추행 문제 소극적"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현지시간) 바티칸 광장에 모인 1만 명이 넘는 순례객들에게 한 부탁이다. 사순절(四旬節·그리스도의 부활 전 40일)을 맞아 교황청 사람들과 함께 ‘영적 훈련’을 떠나려 한다며 한 말이었다.



 실제 교황은 이날 오후 버스를 타고 바티칸에서 24㎞쯤 떨어진 아리차란 곳으로 향했다. 성 바오로수도회가 운영하는 피정(避靜·가톨릭 신자가 일상에서 벗어나 기도와 묵상하는 일) 집으로,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도 종종 이용하는 곳이었다. 교황은 인근 호수 건너편에 있는 교황 별장을 마다했다.



 교황의 행보는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로이터통신의 평가대로 “요즘 사람들 기억엔 처음 있는 일”이다. 과거 교황들도 피정을 했으나 바티칸에서 했다. 한국 가톨릭 관계자는 “피정의 본래적 의미가 일상으로부터 떠나서 정관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대로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도와 묵상을 하며 보낼 일주일 중엔 13일이 끼어있다. 1년 전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 교황이 된 날이다. 조촐하게라도 기념할 법한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히려 바티칸을 비우는 길을 택했다.



 그렇다고 그의 1주년을 기념하는 움직임이 덜한 건 아니다. 오히려 와글와글할 정도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조니 뎁을 선호하는 이들의 대중음악 잡지 ‘롤링스톤’이 교황을 표지 인물로 게재했다. 로마의 한 거리에선 수퍼맨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른 주먹을 내뻗은 채 날고 있는 벽화도 볼 수 있다. 1977년부터 바티칸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션패트릭 러빗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최근까지 나는 가톨릭 신자란 걸 숨겨야 할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은 바티칸에서 일하는 가톨릭 신자란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작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퍼맨 또는 일종의 스타로 묘사하는 게 나에겐 불편하게 느껴진다. 나는 웃고 울고 자고 친구도 가진 보통 사람”이라고 말한다.



 교황의 인기는 상당 부분 그의 말과 제스처 덕분이란 분석이 많다. 종양이 가득한 얼굴의 신자를 안고 기도하던 모습과, 교회에서 오랫동안 경원했던 동성애자들을 향해 “누가 그들을 심판하겠는가”라고 말을 건넨 게 대표적이다. 교황은 자본주의 탐욕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주창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이 가톨릭교회를 위기에서 건져낼 만한 변화를 이뤄냈는가에 대해선 평가가 유보적이다. 베네딕토 16세를 괴롭혔던 바티칸 은행 스캔들과 사제에 의한 아동 성추행 문제와 관련, 교황이 경제사무국을 신설하는 등 바티칸 재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비해 아동 성추행 문제에 대해선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교황 스스로도 “교회가 (다른 기관들에 비해) 부당하게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어쩌면 교황의 진정한 위기는 점차 벌어져가는 교리와 일상생활 간 괴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일 수 있다. 낙태·피임·동성애 등 이슈다. 교회 내에서 자칫 보·혁 갈등을 불러올 논의들이다. 교황청 사정을 아는 한 인사는 “교황이 따뜻한 말을 건네고 연민을 보이는 것이지 이런 이슈에 덜 보수적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회 밖의 기대치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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