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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KT, 배수진 친 황창규

중앙일보 2014.03.11 00:30 경제 1면 지면보기
황창규 KT 회장은 10일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고강도 쇄신을 주문하는 e메일을 보냈다. 홈페이지 해킹 사건뿐 아니라 ‘준(準)공무원 조직 문화’ 등 황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블룸버그]


휘청대는 ‘통신 공룡’ KT를 이끌고 있는 황창규 회장이 10일 KT 임직원에게 “더 물러설 곳이 없다”며 조직적 쇄신을 주문했다. 지난달 자회사(KT ENS) 직원의 3000억원대 사기 대출 사건에 이어, KT 고객 1200만 명의 정보가 해커에게 허탈하게 털린 후 나온 황 회장의 경고다.

[뉴스분석] "회장입니다" 고강도 쇄신 e메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복지부동 조직문화에 경고



 KT에 따르면 황 회장은 이날 오전 임직원 전체에게 ‘임직원 여러분, 회장입니다’는 제목의 e메일을 보냈다. 고객정보 유출 사건을 언급하며 “IT전문기업으로 더없이 수치스럽다”고 말문을 열었지만 본론은 따로 있었다.



 황 회장은 작심한 듯 KT 조직 내부의 치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알면서도 관행이라며 내버려두는 태도, 보여주기 식 업무추진, 임시방편 및 부서 이기주의로 인해 고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라”며 “태도와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1월 말 취임 후 43일간 황 회장의 눈에 비친 KT는 관행과 보여주기 식에 젖어 기본을 지키지 못한 기업이었다. 그러면서 황 회장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 하나만 더 잘못되어도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며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를 강조했다. 강도 높은 엄포도 이어졌다. 그는 “말만 하고 책임지지 않거나, 기획만 하고 실행은 나 몰라라 하거나, 관행이므로 어영부영 넘어가는 행동은 절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KT 내부에선 조금 다른 기류가 흘렀다. 익명을 요구한 KT의 한 직원은 “민영화 이후 벌써 네 번째 회장을 맞이하는 직원들한테 회장들이 취임 초마다 얘기하는 쇄신이나 혁신은 익숙한 단어”라 고 말했다. 또 다른 KT 직원은 “한동안 신임 회장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겠지만 3~5년 정도 머물다 나가는 회장이 조직문화를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1월 KT 사령탑을 쥔 이석채 전 회장 때에도 ‘데자뷰(기시감)’처럼 되풀이됐다.



 이 전 회장도 취임 직후 ‘올 뉴 KT’(All New KT, 완전히 새로운 KT)를 외치며 무사안일과 연공서열 식 조직문화를 깨자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문제의식을 가지는 주인의식 ▶현장과 자율 위주의 조직으로의 혁신 ▶관행적 투자와 지출을 지양하는 효율을 3대 원칙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 전 회장발 KT 개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5년간 곪아있던 무사안일은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로 드러났고, 통신기업인 KT의 통신사업 경쟁력은 창사 이래 가장 열악한 상태로 떨어졌다.



 이 같은 결과는 복지부동 조직문화의 영향이 크다. KT는 본사에만 3만2000명, 계열사 56곳(공정거래위원회 기준은 52곳)까지 포함하면 6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조직이다.



 경영진이 혁신을 주문해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2009년 이동통신사업을 하던 KTF가 KT에 합병되자, 전직원 2000명 규모에서 가능했던 기민하고 개방적이던 KTF의 조직문화도 함께 묻혀버렸다.



 김진백 중앙대(경영학과) 교수는 “장관 수명보다 일반 직원 수명이 더 긴 공무원 조직과 비슷한 현상”이라며 “CEO 면전에서는 복종하겠지만, 기업의 미래나 실적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는 직원이 나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KTF 출신의 한 KT 직원은 “경영 효율화를 내건 이전 경영진의 구조조정 시도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데다 직원들 간에 ‘진골(합병 전 KT 출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조직 분위기까지 겹쳐 임직원 간 단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KT 매출은 6조2145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슷했지만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이 각각 1494억원과 3007억원에 달했다. 2009년 4분기 6000명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한 영향으로 적자를 낸 이래, 두 번째 적자다. 게다가 지난 1월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최근 KT의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로 강등했다.



전직 KT 임원 출신인 한 인사는 “KT는 3~5년 단위로 뒤엎어지는 혁신 피로감이 배어있는 조직”이라며 “황 회장이 주문한 혁신이 성공할지 또다시 구호에 그칠지 여부는 올해 안에 판명 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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