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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해진 청바지, 낙낙한 품

중앙일보 2014.03.11 00:16 경제 11면 지면보기
기존 정치인을 거침없이 비판하며 부패정치를 쓸어내겠다는 구태 파괴자, 39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오른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 헤진 느낌의 청바지 차림으로 공식석상에 나서는 청바지 총리-. 부패로 얼룩진 이탈리아를 구원할 정치인으로 조명받고 있는 마테오 렌치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를 수식하는 말 가운데 ‘헤진 느낌의 청바지 차림’은 잘못된 표현이다. ‘해진 느낌의 청바지 차림’으로 고쳐야 한다.



 ‘헤지다’는 ‘헤어지다’의 준말로 정을 끊고 이별하다, 모여 있던 사람들 또는 붙어 있던 물체가 흩어지다, 살갗이 터져 갈라지다는 뜻의 동사다. “입안이 헤져 도저히 밥을 못 먹겠어요”처럼 사용해야지 “가죽 소재 외투에 밑단이 헤진 청바지로 멋을 냈다”와 같이 쓰는 것은 잘못이다. 옷이나 신발 따위가 닳아서 구멍이 나거나 떨어지다는 의미의 동사는 ‘해지다’(해어지다의 준말)이므로 ‘밑단이 해진 청바지’로 바루어야 한다.



 “나일론은 가볍고 질겨 헤진 옷 깁는 게 일과였던 주부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원자바오가 헤진 점퍼를 입는 등 친서민 행보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나중에 일가의 부정축재 의혹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진 옷’ ‘해진 점퍼’가 바른 표현이다.



 옷과 관련해 혼동하기 쉬운 말로 ‘낙낙하다’도 있다. “낙락한 품과 늘어뜨린 어깨선, 큼직한 칼라의 외투가 지난해 유행했다”와 같이 쓰는 경우가 많지만 크기·수효·부피 따위가 조금 크거나 남음이 있다는 뜻의 형용사는 ‘낙낙하다’이다. ‘낙낙한 품’이라고 해야 바르다.



 발음이 같아 혼동하기 쉬운 ‘낙락(落落)하다’는 아래로 축축 늘어지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다는 의미로 쓰임이 다르다. 순우리말인 ‘낙낙하다’는 한 단어 안에서 비슷하거나 같은 음절이 겹쳐 나는 부분은 같은 글자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 표기한 것이지만 한자어인 ‘낙락(落落)하다’는 두음법칙에 의해 첫 음절은 ‘낙’으로 쓰고, 둘째 음절은 원음대로 적은 것이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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