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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미 연준도 노아의 홍수에서 "불이야!"를 외쳤다

중앙일보 2014.03.11 00:12 종합 29면 지면보기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통화정책 회의록을 공개했다. 읽다 보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부분적으로는 연준 위원들이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여서다. 그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보다는 잘못된 것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데 연준의 많은 위원들이 할 줄 아는 얘기라고는 인플레이션밖에 없었다.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매튜 오브라이언 기자가 통계를 냈다. 2008년 8월 회의록을 보면 인플레이션이 322번 언급된다. 반면 실업은 28번, 금융시스템 위험이나 위기는 19번만 오르내렸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다음 날인 그해 9월 16일 회의록을 보자. 회의 참가자들은 인플레이션을 129번, 실업을 26번 말했지만 금융시스템 위험이나 위기는 4번 언급하는 데 그쳤다.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은 당시 정책 토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직면했는데도 줄곧 상상 속의 인플레이션 위협에 사로잡혔다. “노아의 홍수 속에서 불이야, 불!을 외치는 꼴”이라는 경제학자 랄프 호트리의 그 유명한 성찰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21세기의 금융위기에 직면한 통화정책 입안자들도 3세대 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틀린 것에 경도됐다.



2008년만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위협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거듭 밝혀졌음에도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가상의 물가상승 위협에 꽂혀 있었다. 지난 5년간 미국의 CNBC와 월스트리트저널, 저명한 보수 경제학자들은 천정부지의 인플레이션이 당장이라도 닥칠 것처럼 끊임없이 경보음을 울려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인플레이션 경도론자들이 에너지와 식품 가격에 좌우되는 물가 변동과 진성 인플레이션을 가려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솔린 가격은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유소의 가솔린 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암울한 경고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깜박이등 같은 에너지 가격의 일시적 변동은 인플레이션의 확실한 척도가 될 수 없다. 인플레이션 경도론자들은 경기 침체 국면에서의 통화량 확대가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건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이나 2009년 초에는 그들이 이런 설명을 외면해야 할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을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는 점을 일러주는 여러 일이 있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경제에 대한 분석 오류보다 심각한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궁극적으로 그 근저에는 정치 논리가 깔려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집착론자들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금세 명확해진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에 집착하고, 인플레이션 경도론자들은 거의 모두 보수주의자들이다.



 왜 그럴까. 이들은 민간 부문이 스스로 최선의 위기극복 처방을 안다고 믿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조지프 슘페터는 금융 완화 정책으로 공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렬히 비판했다. 슘페터는 금융완화는 “공황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경고까지 했다. 현대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들 두 학자만큼 거칠게 의사를 밝히지는 않지만 방향은 다를 게 없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들 주장의 이면에는 재정 및 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책은 반드시 재앙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확고한 믿음이 깔려 있다. 경제위기의 아프리카 짐바브웨까지 들춰낸다. 이들의 신념은 너무 확고해서 해마다 틀린 것이 나타나도 절대로 약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경제적 상황이 어떻든 강경 조치와 처벌을 선호한다. 영국 저널리스트 윌리엄 키건이 ‘통화주의 가학증(sado-monetarism)’으로 표현한 이 성향은 아직도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심각한 상황일까. 연준은 아직 통화주의 학대론자에 굴복하지 않았다. 2011년 가솔린 가격의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뉴스를 가득 메우고 공화당 의원들이 달러 가치 하락을 비판했을 때에도 연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이들의 강경한 목소리는 분명 연준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준은 더 많은 돈을 풀었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조치가 도입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반대도 인플레이션 집착과 관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대공황 당시 정책 결정자들의 잘못에 놀라곤 한다. 지금은 어떤가.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Great Recession)는 잘못을 고칠 기회였는데 결국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말았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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