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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호랑이굴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중앙일보 2014.03.11 00:08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심드렁하다. 얼마 전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윤여준은 “우리 벌써 당을 두 개 만들었어, 재주도 좋아”라며 “허허” 웃었다. 그 웃음이 쓰다. 그의 말을 들으니 대한민국에 창당대행업이 곧 생길 것 같다.



 ‘최대한 단기간에 정당 하나 만들어 드립니다’ ‘발기인 모아드립니다. 대행료는 발기인 규모에 따라 다릅니다’ 하고 말이다.



 그에겐 안철수 의원이 올인하고 있는 야권통합 신당이 호랑이굴로 보인다. 어떤 곳인지 너무 잘 안다. 들어갈 땐 다들 꽃가마를 타고 가지만 나올 땐 상여를 타고 나오는 곳이란 걸. 호랑이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 호랑이굴의 국민경선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뽑는 2002년 국민경선. 그때 권력심층부에서 한 일을 박 의원이 깠다. 종편 프로그램에 나와서다.



 “권노갑 고문이 이인제 후보를 돕자고 했는데 거절했습니다. 이인제 후보가 김대중 정신을 이어갈 분인가… 저는 김대중 대통령께 노무현 후보가 가장 바림직합니다라고 수~십 번 말씀 드렸습니다. 김 대통령은 절대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나중에 김 대통령도 ‘노무현 후보 같은 분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광주에 전화를 많이 했습니다.”



 박광태 당시 광주시장의 말도 소개했다. “박지원 실장이 ‘대통령 뜻이니 노무현을 지지하라’고 해서 모든 조직을 동원했다”는 내용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 의중을 앞세워 특정 후보를 은밀히 지지했다는, 일종의 ‘셀프폭로’다. “이제 선거법 공소시효(6개월)가 끝났다”면서 그는 자신이 한 일을 폭로했다. ‘노풍’을 일으킨 민주당 광주경선. 이렇게 전화 몇 통으로 결정되진 않았다. 박 의원 스스로도 “나는 벽돌 하나 놓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놓은 벽돌은 이인제 진영엔 해머였다. 꽃가마 타고 DJ 진영에 들어간 이인제는 결정적일 때 뒤통수를 맞았다.



 #2. 호랑이굴의 여론조사



 2010년 A군(郡)엔 휴면(休眠) 상태의 유선전화 번호가 4000여 개 있었다. 이사 가고 나면 생기는, 주인 없는 번호가 휴면회선이다. 그게 별안간 동났다. 한 사람이 몇천만원을 들여 2000개를 사들였다. 임자 없는 번호가 왜 수천 개나 필요했을까. 민주당 여론조사 경선 때문이었다. 전화번호를 사들인 사람은 지방선거 출마자의 측근이었다. 그들은 2000개의 집 전화번호를 30여 개의 휴대전화에 착신전환했다. 부재중에 전화가 걸려와도 휴대전화로 받을 수 있게 꼼수를 쓴 거다. 여론조사 경선은 집 전화로만 한다. 700명이 응답할 때까지 전화를 돌리는데, 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들은 전화번호를 사놓고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진짜로 150통의 여론조사 전화가 왔다. 150700, 21.4%의 지지율을 거저 챙겼다. 검찰 수사로 밝혀진, 지방선거 때의 여론조작 사건이다.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손학규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패한 이유는 조직에서 밀린 탓도 있지만, 근본은 저런 바닥문화를 몰랐기 때문이다.



 #3. 신당이란 호랑이굴



 고공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반칙을 하고, 바닥에선 ‘봉이 김선달’이 꼼수를 부린 곳인줄 아는지 모르는지 안 의원이 들어가겠다고 한다.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은 사람은 YS 말고 없다. 사실 YS는 빼야 한다. YS가 바로 호랑이였다. 그러나 안 의원은 윤여준 눈엔 순박한 사슴이다.



 하지만 앞날을 누가 알까. 인공충격을 가한 것일망정 야권통합신당의 지지율 박동소리는 제법 우렁차다. 무엇보다 시간을 벌었다. 청명에 죽느냐, 한식에 죽느냐였으나 최소한 ‘앞날’이란 시간이 생겼다. 반칙과 꼼수문화만 박물관에 보내도 대박이다. 안 의원은 윤여준의 걱정을 잘 안다고 했다. 어쨌든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과거대로 살진 않는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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