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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앵글로 관찰한 진중권 - ③

온라인 중앙일보 2014.03.11 00:01
진중권은 여성중앙 3월호 강용석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사와 생활모습을 공개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한참 조종사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진중권의 가족이 궁금해졌다. 진중권은 목사인 아버지와 피아노 강사인 어머니 슬하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자랐다. 위로 각각 미술과 음악을 전공한 누나들이 있고, 남동생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진중권은 독일 유학 중 일본 여성과 결혼해서 아들 한 명을 두었다. 아내와 아들은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도 어쩔 수 없는 기러기 아빠다.



2남 2녀. 생활이 녹록치 않았겠는데요



-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 하시면서 먹여 살렸어요. 개척 교회는 목사 봉급이 안 나오거든요. 남들이 30만원 받을 때 우리 아버지는 7만원 받으셨어요. 누나가 주일 예배 반주자였는데, 당시 우리 교회 수준이 촌동네인데도 피아노 3중주가 있을 정도였요.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동네 교회인데 피아노연주로 유명했어요. 교회는 김포 공항동에 있는 중앙감리교회였는데 지금은 다른 분이 하고 계세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셨죠



- 아버지는 제가 중1 때 연탄가스 마시고 질식사로 돌아가셨어요. 어쩌면 그때부터 막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교육을 못 받은 데 대한 한이 서린 분이세요. 그래서 목사가 된 거죠. 중대 법대를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중퇴하고, 신학대를 들어갔죠. 강화도에 있는 교회로 발령이 났는데, 거기로 가면 애들 교육을 못 시킨다고 개척 교회를 세운 거였어요.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들이 전부 잘 컸어요



- 부모님이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우리끼리 알아서 놀게 하고, 공부든 놀이든 하고 싶을 때 하도록 내버려두는 식이었죠. 자식 교육이 아등바등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아신 거죠. 대부분 부모의 말이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터치 안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교육인 거 같아요.



누나 진은숙(작곡가)씨가 정명훈 지휘자와 함께 일하시죠



- 네. 정명훈 선생을 되게 높이 평가해요. 누나가 한국에 들어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정명훈 선생이 불러서 들어온 거예요. 사실 우린 가족끼리 안 친해요. 연락도 잘 안 하고, 신문 보고 트위터 보고 소식 전해 듣는 스타일이죠. 이번에 누나가 한국에 온 것도 신문 기사 보고 알았어요.



누나는 독일에 언제 갔나요



- 학부 끝나자마자 갔으니까 1986년 정도에 갔어요. 30년 거의 다 됐죠. 아직도 거기에 살아요. 남편이 핀란드 사람이에요. 20세 연하 핀란드 남자. 매형이라고 부르기가 참 애매해서 그냥 이름 불러요(웃음). 그래서 농담으로 ‘너도 참 인생 잘못 꼬였다’는 식으로 말하곤 해요. 피아니스트 하다가 기획 쪽으로 바꿔서 일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집안이 다국화되어 있네요. 다 같이 모이면 언어는 뭘로 쓰나요



- 아내와는 주로 독일어로 해요. 가장 편하거든요. 물론 일본말이랑 한국말도 가끔 하고요. 재밌는 건 우리 어머니랑 아내가 대화하는 방식이에요. 어머니가 식민지 시대에 학교를 다녀서 말하는 건 안 되고 듣는 건 되거든요. 그래서 엄마는 한국말 하고 아내는 일본말 하는데, 서로 듣는 것만 되다 보니 다른 언어로 대화해도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이 되더라고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되게 웃겨요.



컴퓨터 프로그래머 남동생은 뭐 하고 지내나요



- 요즘은 프리랜서 할 거예요, 아마. 자기 회사 하다가 망한 거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1000만원 있어?” 해서 “응” 했더니 “보내줘” 하길래 보내줬어요. 이유 묻지도 않고 그냥 보내줬어요. 우린 연락 안 하는 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예요. 갑자기 연락하면 신변에 문제가 생겼거나 돈이 급하거나 둘 중에 하나야(웃음). 지금 그 녀석은 결혼해서 애 봐요. 아내가 일하고, 녀석이 육아하고 집안살림하면서 살아요. 영리한 거죠. 어차피 둘 중에 한 명이 아이를 봐야 하는데 아내가 사회적으로 능력이 있다면, 둘 중 한 사람이 돈 벌고 한 사람이 집에 있음 되는 거잖아요. 부부간에 합의가 된 거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보기 좋아요.



일본인 아내는 어때요



- 독일 유학 당시 어학원에서 만났는데 우연히 옆집에 살게 됐어요. 누나가 프랑스 파리에 가는 바람에 혼자 살게 된 터였죠. 옆집 사는 아내가 매일 빵만 먹는 게 불쌍해서 제가 저녁밥 지어서 먹이고 했어요. 그렇게 친해지다 보니 같이 놀러 다니고 같이 술 마시러 다니고, 또 그러다 보니 예뻐 보이고 예뻐 보이다 보니 같이 자게 되고 한 거죠. 그러다 집세를 좀 아껴보자 해서 방 두 개짜리를 얻어 3년 정도 동거를 하고, 집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 거죠.



남자 진중권은 논객 진중권과 다른 모습이겠죠



- 논객 진중권은 쌈닭인데, 남자 진중권은 정반대예요. 안 싸워. 아내랑도 3년 동거하면서 한 번도 안 싸우고 잘 살았어요. 프러포즈도 “나랑 살아보니 어떠냐, 큰 문제없으면 나랑 결혼하자”라고 했어요.



상남자네요



-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좀 있어요. 유학 시절에 난리 났었지(웃음). 여자들에 대한 기대를 싹 포기하고 쿨하게 가니까 오히려 좋아하더라고요. 단도직입적이거든요. “너 맘에 드는데 나랑 사귈래?” 하는데 여자가 “노” 하면 딱 끊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또 다른 여자 만나는 거죠.



아내는 한국에서 얼마나 지내다 간 거예요



- 한국에는 1년도 안 살았어요. 아시아보다 유럽을 좋아하죠. 일본 사람인데도 일본을 제일 끔찍해하고 한국은 그래도 재밌어해요. 독일을 가장 사랑하는 여자예요.



아들은 한국어 좀 하나요



- ‘잘 있었니’ ‘배고파’ ‘밥 먹었니’ 등 안부 인사 정도만요. 올해 만 14살이에요. 독일에서 쭉 살았고,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공부는 못해요.



차두리 선수보다 독일어 잘하나요



- 글쎄요. 차두리는 독일어 실력이 상당하지 않아요? 독일에서 인기 있었던 것도 언어가 좀 돼 의사소통이 가능해서인 걸로 아는데. 아들은 독일어 성적이 ‘우’ 정도 나와요.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독일 아이 중에서 아들보다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하다는 게 아이러니예요(웃음).



아들이 공부 머리는 아니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인 거예요



- 이해가 좀 느려요. 내가 웬만하면 공부하라고 잔소리 안 해요. 독일에서 5년 유학하면서 성적이 5(수우미양가)까지 있는 건 아는데, 6이 있다는 건 아들을 통해 처음 알았다니까요.



6은 ‘Fail’인가요



- 최악인 거죠(웃음). 그런데 정작 아들은 신경 안 써요. 어떤 과목은 4를 받았는데, “그래도 3은 받아야 중간은 가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지난번에 5 받았는데 이번에 4 받았으면 잘한 거 아니냐, 나는 만족한다”는 식이죠. 틀린 말은 아니에요 또.



아들은 독일에서 무슨 학교 다녀요



- 김나지움. 공부를 못해서 세 군데 떨어지고 한군데 운 좋게 들어간 거예요. 아들이 고대 그리스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마침 역사 선생이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 역사에 대해 설을 풀었더니 특별히 뽑아준 거죠. 뜬금없는 게 기회가 되는 시대니까. 앞으로도 그럴 일들이 생기겠죠 뭐. 알아서 잘 헤쳐나갈 거예요.



아빠와 어떤 점을 닮았나요



- 별로 안 닮았어요. 아들은 욕심이 없어요.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대요. 엄마가 해주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하고. 솔직히 마누라가 요리를 정말 못하거든요. 유학 시절에도 항상 제가 요리했죠. 아들은 게임을 해도 빠지지 않고, 뭐든 적당히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소설책 읽는 걸 특히 좋아하는데, 700페이지 2권으로 된 『헝거 게임』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는 스타일이에요. 독서광이죠.



50대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헛헛함도 더 많이 느낄 텐데, 아들과의 추억이 없어 아쉽지는 않나요



- 그래서 일부러 자꾸 기억해내고 기록도 해요. 어렸을 때 아들이랑 한국에서 지낼 때 버스에서 내렸는데 첫눈이 온 거예요. 그게 기분이 좋았는지 눈송이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까르르 웃는 장면이 기억나요. 한번은 제가 독일에 갔을 때 침대가 하나뿐이라 아내랑 아들은 침대에서 자고 저는 바닥에 이불 깔고 자는데, 애가 밤에 깬 거예요. 근데 어두운 데다 제가 바닥에 있으니까 안 보였는지 “아빠, 아빠” 찾으면서 막 우는 거예요. 그래서 불 켜고 “아빠 여기에 있다”고 하며 간신히 재웠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상당했던 거죠. 그리고 같이 목욕하면서 서로 등 밀어주고 손가락 잘리는 마술 하면서 웃고 떠든 장면들이 기억나네요. 아들이랑도 가끔 이런 얘기를 나눠요.



둘째는 안 낳기로 한 건가요



- 아들도 원래는 안 낳으려고 했는데 생겨버렸어요. 그때 일본 콘돔을 썼는데 일본 콘돔이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니까!



저도 세 녀석 다 콘돔 문제로 생긴 아이들입니다



- 하하하하. 그렇다니까!



어느 정도 떨어져 지내나요



- 여름엔 일본이나 한국에서 보고, 겨울엔 내가 독일로 가요. 한번 보면 한 달 정도 함께 지내요. 결국은 한국에 와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돈을 모으긴 힘들겠는데요



- 아내한테 돈 보내줘야지, 어머니 용돈이다 뭐다 해서 드리다 보면 만져보지도 못하고 한 달에 600만~700만원이 금방 빠져 나가요. 가끔 가다 기부도 해야 하고. 5월에 세금 낼 땐 나도 ‘우익’이 된다니까요. 세금 내기 위해 따로 적금을 들어야 할 정도니까요. 그렇게 벌어서 혼자 짜장면 시켜 먹을 땐 가끔 왜 사나 싶고 서럽기도 해요. 또 여름과 겨울에 함께 지낼 때 해외 체류비에 여행비에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아요. 먹고살기 힘들어요. 모이면 또 여행을 한 번 해줘야 하거든. 한번은 안 쓸 줄 알고 마누라한테 카드를 폼 잡고 줬더니 170만원을 긁어온 거예요. 그러면 그달은 라면만 먹는 거죠, 뭐.



수입에서 비중이 가장 큰 건 뭐예요. 인세? 교수 월급? 방송 출연료? 강연료?



- 프로그램 맡으면 금액이 좀 되겠지만, 나는 패널이니까 몇십만원이 고작이에요. 정치적으로 나가는 방송은 최소 비용만 빼고 다 정당에 기부하니까요. 얼마 전에 공학 하는 정재승 선생님과 방송을 같이 했는데. 이분이 인문학에 관심이 많고 굉장히 폭넓게 아세요. 저도 인문학을 했지만 자연과학에도 관심이 많아 서로 교집합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재밌었어요. 저는 그런 방송이 좋아요. 출판사에서 팟캐스트 초대받아서 한 번 했는데 그게 내 취향이에요. 다른 정치적인 방송은 재미없어요.



기러기 생활 13년이면 혼자 사는 데 당연히 익숙해졌을 테고, 애인은 없으세요(웃음)



- 아 왜 이래요. 근데 뭐 옛날 애인들은 다 비밀번호만 남는 거 아니겠어요(웃음)? 네이버, 다음, 천리안 계정, 트위터 계정 등등. 쭉 다 합하면 연애사가 나올 거예요, 아마.



아내가 연애 족보의 온상지인 이메일도 뚫고 있는 거 아니에요



- 그래서 나도 수시로 비밀번호를 바꾸고 있잖아요(웃음).



저는 휴대폰을 패턴으로 해놓으면 아내가 “어? 이거 왜 해놨어?” 하면서 수시로 체크하고, 왜 걸어놨냐고 따져서 그냥 비밀번호 안 걸어놔요



- 우리 아내는 저에게 말로 하진 않지만 눈빛이나 행동으로 ‘너무 멀리 가지 마라’ ‘네가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 이런 식으로 경고를 해요. 뭐 거의 전지적인 능력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딴짓을 하진 못해요. 갔다가도 빨리 오게 되고(웃음).



임어당의 글에 보면 아내는 일본 여자가 최고라고 하던데 동의하시나요



- 저를 가두거나 잔소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다만 트위터로 다 읽고 감시하죠. 한국말을 다 읽고 이해하거든요. 티는 안 내는데 자기가 알고 있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알리는 스타일이에요. 절대로 이래라 저래라, 뭐 했냐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알리는 고단수죠. 가끔 무서워(웃음).



말발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데, 아내와의 사이에서는 어때요



- 우린 안 싸워요. 내가 싸우는 걸 싫어하거든요. 싸울 일을 만들지 않고, 조금이라도 기분 나빠하면 접고, 그냥 들어주면 싸울 일이 없는 거 같아요. 또 ‘화가 났는데 네가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 화가 나 있거든? 그러니까 잠시 동안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둘래?’ 하는 식으로 하면 싸움이 안 돼요. 일본 사람들은 맞받아치지 않는 성격이에요. 대신 사흘 뒤쯤 ‘그날 왜 화가 났느냐? 그렇게 말을 해서 서운했다는 식으로 표현해요. 그럼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고 서로 입장을 알고 당시의 감정을 정리하면 끝이에요.



기획=정은혜 기자, 글=강용석

사진=문덕관(studio lamp), 장소 협조=스프링 컴 레인 폴(02-3210-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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