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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다른 모든 … 』 펴낸 은희경

중앙일보 2014.03.07 00:24 종합 21면 지면보기
은희경의 신작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그의 작품은 우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개성이 중요하다면서도 다름에는 관대하지 않다.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은희경(55)의 신작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문학동네)는 그런 우리의 무뎌짐과 무감각을 깨우는 찬 눈송이 같다. “소설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단 하나의 눈송이들’에 집중했다.

남과 같지 않아 고립된 사람들 그래도 괜찮아



 책에 실린 6편의 단편은 연작의 형태를 빌려 인물과 사건이 겹치고 맞닿으며 한 편의 느슨한 장편처럼 읽힌다.



 “장편으로 쓰려면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이음매를 고민해야 해요. 그런데 연작은 독립된 이야기를 쓰면서도 전체적인 풍경을 보여줄 수 있죠.”



 그가 닮은 듯 다른 각각의 단편으로 엮어낸 전체 풍경은 ‘고독의 연대’다.



 “이번 소설집 속 인물은 다 고독해요. 그런데 고독을 이겨내려 하거나 고통받지 않아요. 그냥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방식대로 살죠. 남과 똑같이 살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한 사람이라도 괜찮다. 그런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고독의 연대에요.”



 결혼과 동시에 신도시로 옮긴 새댁(‘프랑스어 초급과정’)이나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입대를 위해 귀국한 청년(‘스페인 도둑’),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 모자(‘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등 소설 속 인물은 각자의 고독을 안고 있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겉돌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흔들린다.



 인물들은 삶에도 서투르다. 셈에 어둡거나 길치거나 기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렇지만 태연하다. 루저같다고 좌절하거나 자학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고 받아들이며 상처받지 않는다.



 고독한 개별자가 연대할 수 있는 것은 낯선 이들이 유지하는 거리 덕분이다. ‘이방인의 부축이란 사랑하는 이의 헌신이 결코 줄 수 없는 방심과 편안함을 제공한다’는 소설 속 구절처럼. “너무 가까워지면 ‘관계’가 개인을 삼키고, 너무 멀어지면 거리가 ‘고립’을 낳는다”는 문학평론가 권희철의 평처럼 .



 “여행을 하다 보면 친절한 사람을 만나잖아요. 근데 낯선 사람이라서 친절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가족이라면 안 하는. 가까운 이들의 사랑과 헌신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다음이 있으니까. 얽힌 게 많은 거죠. 하지만 스치는 인연, 가벼운 존재끼리는 오히려 연대할 수 있고 그게 따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의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의 거리도 중요하다고 했다. 연작의 형태를 빌려 긴 시간을 끌어들인 것도 그래서라고 했다.



 “자기 인생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으려면 시간의 이동도 필요해요. 나중에는 별것도 아닐 텐데 왜 지금 이렇게 매달리나 생각하려면 시간을 넓혀서 봐야 하죠. 시간을 확장해서 풍경을 보면 달리 보이니까요.”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은희경=1959년 전북 고창 출생.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 『새의 선물』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소설집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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