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버스토리] '탄소 없는 섬' 행복 충전하러 옵서예

중앙일보 2014.03.07 00:01 Week& 1면 지면보기
제주도에서 전기차 렌터카 서비스가 시작됐다. 사진은 유채꽃 만발한 섭지코지 어귀.


2주일 전 제주도 성산일출봉 주차장. 관광객을 싣고 온 대형 버스와 렌터카 딱지를 붙인 자동차로 빈 틈이 없었다. 그런데 파랗게 칠한 여섯 자리만 비어 있었다. 전기자동차를 위한 자리였다. 제주도 인기 관광지에 전기차 충전소를 마련한 것이었다.

제주도, 전기차 렌터카 시대



제주도가 올해 전기차 렌터카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1월 렌터카 회사 ‘SK네트웍스’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전기차 대여 서비스를 개시했다. 현재 1주일에 10대 정도 대여된다고 하니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기차 렌터카의 인기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KT금호 렌터카도 조만간 서비스를 시작한다. 현재 제주도에는 대여용 전기차가 28대 있다. 올해 안에 30대를 추가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이미 전기차의 섬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 전기차가 1871대, 충전기가 1962개 있다. 이 중에서 전기차 360대, 충전기 497개가 제주도에 있다. 자동차·충전기 모두 서울이 가장 많지만 전체 차량 대비 전기차 비율은 제주도가 서울의 5배다. 실제로 제주도 곳곳에서 EV(Electric Vehicle) 마크가 붙은 전기차가 수시로 눈에 띄었다.



한국환경공단 이충렬 과장은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100㎞ 수준으로 짧다는 한계가 있지만, 제주도에는 곳곳에 충전소가 설치돼 있어 전기차 문화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가 제주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천혜의 자연환경 때문이다. 하나 지금의 제주도를 무공해 지대라고 부르기는 쉽지 않다. 현재 제주도에 등록된 차량은 약 33만 대다. 2012년 가구당 차량 보급대수가 1.12대로 전국 시·도 중 1위다. 여행자 사이에서도 렌터카가 유행한 지 오래다. 제주도에 등록된 렌터카는 현재 1만6000대에 달한다.



제주도 전기차 사업을 담당하는 제주도청 김홍두 스마트그리드과장은 “제주도는 ‘탄소 없는 섬’을 기치로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 100%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도민을 중심으로 전기차 이용이 활성화하면서 전기차 렌터카 여행도 조만간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전기차 렌터카 시대의 개막을 맞아 week&이 직접 전기차를 몰고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전기차야말로 제주도 여행에 제격이었다. 제주도에서는 과속할 만큼 급한 일도 없었고, 서너 시간 이상 꼼짝 않고 핸들을 잡을 일도 없었다. 연료비가 들지 않으니 주머니가 가벼워져 좋았고, 제주의 환경을 지킬 수 있다는 기분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몇 가지 점검만 빠뜨리지 않으면 전기차로 달리는 제주도 드라이브 여행은 제법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만큼 착한 여행이 또 있겠나 싶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얘들아, 볼거리 많은 중문단지야 … 자기야, 유채꽃 넘실 섭지코지야

제주도 ‘전기차 드라이브’ 추천 코스




week&이 이틀 동안 직접 전기차를 몰고 봄 향기 밀려오는 제주를 달렸다. 충전소 위치와 주행거리를 꼼꼼하게 따져가며 한나절 추천 코스도 짰다. 아이와 함께라면 볼거리 많은 제주도 남서쪽, 커플 여행이라면 해안도로 근사한 섬 동북부를 추천한다.



전기자동차는 연료비 부담이 없고, 승차감이 좋아 여행자가 이용하기에 제격이다. 젊은이가 즐겨 찾는 제주도 김녕 성세기해변.


가족을 위한 남서부 코스

오설록티뮤지엄~이중섭 거리, 76㎞




“일반 자동차와 크게 다른 건 없습니다. 배터리 잔량을 잘 확인하고, 필요할 때 충전소를 찾아가면 됩니다.”



공항에서 자동차를 건네준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 강지웅 매니저는 걱정할 것 없다면서도 전화할 일이 많을 거라며 여운을 남기고 사라졌다.



시동을 걸었다. 계기판에 ‘Ready’라는 초록불이 들어왔을 뿐 시동이 걸렸다는 어떤 느낌도 없었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니 차가 쓱 앞으로 나아갔다. 공항 주차장에서 시속 20㎞ 이하로 움직일 때는 골프 카트를 탄 기분이었다.



week&이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추천하는 코스는 남서쪽 서귀포 지역이다. 내비게이션에 ‘오설록’을 찍고 남쪽으로 향했다. 제주 시내를 벗어나 평화로(1135도로)에 오르자 계기판이 금세 시속 60㎞, 80㎞를 찍었다. 소음이 적어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작게 들릴 뿐이었다.



오전 10시 오설록에서 전기차로 여행 중인 여대생들을 만났다. “싼 가격을 보고 전기차를 빌렸어요. 해안을 따라 사흘째 섬을 돌고 있는데 일반 차와 크게 다른 건 없었어요.” 경기도 고양에서 왔다는 유아진(23)씨가 당차게 말했다. 그들이 나흘간 전기차(기아 레이)를 빌린 비용은 7만원이었다.



오설록을 둘러보고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꼽히는 사계해안도로로 향했다. 내륙을 등지고 송악산을 향해 가는 길도 좋았지만, 차를 돌려 산방산 쪽으로 가는 길은 더 멋졌다. 눈앞에 솟은 산방산과 웅장한 곡선의 용머리 해안, 눈 덮인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남은 전기를 알려주는 눈금이 ‘E(empty)’ 쪽에 가까워졌다. 주행 가능거리는 33㎞. 다음 목적지 중문관광단지까지는 16.5㎞가 남았지만 왠지 불안했다. 산방산에서 가까운 안덕면사무소로 향했다. 급속 충전을 시작하니 15분 만에 충전이 끝났다.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스마트폰으로 뉴스 몇 개 훑어볼 정도의 시간이었다.



중문관광단지로 이동했다. 볼거리가 많아 아이들과 함께라면 피할 수 없는 코스다. 컨벤션센터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에서 한 번 더 충전했다. 서귀포 시내를 지나 숙소로 정한 표선해변까지 가려면 45㎞를 달려야 한다. 빵빵하게 채워두는 게 마음이 놓였다. 30분쯤 달려 서귀포 시내 매일올레시장에 닿았다. 제철 맞은 한라봉을 한 보따리 샀다. 시장 맞은편 이중섭 거리를 쏘다니다가 커피 한 잔 마시니 금세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제주도에는 전기차 렌터카로 찾아가기에 좋은 여행지가 많다. 사진은 비자림.
북동부 해안도로는 커플에 제격

해비치호텔~비자림, 74㎞




오전 10시 해비치호텔에서 밤새 전기를 채운 차를 몰고 섭지코지로 향했다. week&이 커플 여행지로 추천하는 코스는 북동부 해안도로다. 이 코스의 핵심은 일주도로(1132번)를 이용하지 않고,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도로를 달리는 데 있다.



섭지코지로 향하는 길가에 유채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소문대로 바람이 셌지만 전기차는 끄떡없었다. 큼직한 배터리 때문에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200㎏ 더 무거워 경차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섭지코지에서 성산일출봉까지는 약 20분 거리로 멀지 않았다. 평일이었지만 성산일출봉 주차장은 빈틈이 없었다. 파랗게 칠한 6자리만 텅 비어 있었다. 전기차를 위한 자리로, 모두 완속 충전기였다. 일출봉을 올랐다 내려오고, 근처에서 식사까지 하면 2~3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다. 이 시간이면 절반은 채울 수 있다.



다시 해안도로에 올라 북쪽으로 내달았다. 종달리·하도 등 그림 같은 풍경의 해수욕장이 스쳐갔다. 해안선을 따라 40분쯤 달려 제주해녀박물관에 닿았다. 박물관 주차장에 급속 충전기가 있어 케이블을 꽂아놓고 박물관을 둘러봤다. 세화해수욕장 바로 앞에서는 오일장이 열리는 장터가 있었다. 세화장은 날짜 뒷자리가 0, 5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세화에서 김녕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최근 제주에서 가장 뜨는 지역이다. 에메랄드 물빛이 정말 아름다웠다. 월정해수욕장에는 개성 넘치는 카페도 많았다. 커피 맛이 강원도 강릉 커피거리에 뒤지지 않았다.



마지막 목적지는 비자림으로 잡았다. 원 없이 바닷바람을 쐬었으니 이제 숲을 거닐 차례였다. 제주 동부 지역에는 오름도 많지만, 삼림욕을 즐기기에 비자림만 한 곳도 없다.



어느 새 오후 5시가 됐다.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제주공항까지 남은 거리는 35.6㎞, 주행 가능거리는 50㎞였다. 여유가 있겠거니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공항으로 가는 1112도로와 97도로에 오르막길이 많아 주행 가능거리가 뚝뚝 떨어졌다. 히터도 끄고, 열선도 껐다. 우측 차선으로 빠져 천천히 달렸다. 그리고 가까운 충전소를 찾았다. 공항에서 5.5㎞ 떨어진 한라도서관에 급속 충전기 1대가 있었다. 아뿔싸! 다른 차가 충전 중이었다. 비행시간이 촉박해 2분만 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계기판에는 15㎞가 찍혔고, 간신히 공항에 도착했다. 심장이 짜릿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글=최승표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