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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검찰 위기? 문제는 재판이다

중앙일보 2014.03.05 00:31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정치적”이라는 비판일까. “무능하다”는 지적일까. 검사들은 어느 쪽이 더 기분 나쁠까. 내가 보기엔 후자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검사들로선 그만큼 자존심 상하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또다시 곤경에 놓였다. 이번엔 증거 조작 의혹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에 검찰과 국정원이 제출했던 중국 공문서들이 위조된 것이란 회신을 보냈다. 김진태 검찰총장 지시로 진상조사팀이 꾸려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비를 정확히 가리기 위해 중국에 형사 사법 공조도 요청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확보된 공문서는 아닌 쪽으로 기울고 있다. 결론을 지켜봐야겠지만 검찰 책임론을 피하기 힘들다. 입수 과정을 알고 있었다면 증거 조작에 가담한 것이 되고, 모르고 있었다면 증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재판에 제출한 것이 된다.



 문제는 이번 의혹이 최근 주요 사건에 무죄가 잇따르고 있는 것과 결부돼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12년이 선고되자 검찰 고위 간부가 “오랜 가뭄 끝에 큰비가 내렸다”(2월 18일자 동아일보)고 했을까. 전·현직 검찰 간부들 사이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문서를 입수했다고 해서 그대로 재판에 내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입수됐는지를 정확하게 따졌어야죠. 검찰이 국정원에 수사 지휘도 못 하는 분위기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요즘 중견 검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어떤 사건을 많이 하는지 아십니까. 고소 대리 사건을 해요. 그만큼 고소인들도 검찰의 수사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는 김진태 총장이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 총장은 취임 후 경험 많은 부장검사가 직접 중요 사건을 조사하는 방향으로 수사 시스템을 개편하고 있다. 또 신임 검사는 3개월간 독자적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수습제도’를 도입했다. 김 총장은 “충분한 증거와 자료를 구비한 후 기소를 해야 하고, 공소를 제기했다면 최선을 다해 공소유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검찰의 변화가 현실화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간부들을 물갈이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법정에 제시된 증거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공판중심주의 흐름 속에서 검찰 시스템도 재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 부장판사의 말이다.



 “재판을 하다 보면 사건 기록도 읽지 못한 채 법정에 들어오는 검사가 적지 않습니다. 공판 검사 한 명이 2~3개 재판부를 담당하는 지역도 있다고 하고… 조금만 더 파고들면 유죄가 나올 수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검찰은 범죄 수사만 하는 조직이 아니다. 재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거악 척결을 위해 수사 잘하는 검사도 필요하지만 법정(法廷)의 정의를 위해 재판 잘하는 검사도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공익의 대표자’로서 무리한 기소를 걸러내고 경찰 수사, 국정원 수사를 견제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도 다르지 않다. 무죄가 나왔다고 배심원들을 탓하기보다 배심원을 설득하는 능력부터 키워야 하는 것 아닌가. 분명한 건 ‘수사 만능주의’를 재고할 시점이 됐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국가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 기능이 망가지면 민생이 위협받는다. 그런 점에서 증거 조작 의혹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동시에 검찰 기능을 바로 세우는 개혁이 멈춰져선 안 된다.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가 쓴 『검찰의 피로』는 이렇게 말한다.



 “법의 정비, 조직의 개혁을 통하여 바라는 것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환영(幻影)의 정의’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살아 숨 쉬는 검사의 정의와 열정이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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