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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 실업 → 빈곤 악순환 … 고도비만의 비극

중앙일보 2014.03.05 00:01 종합 12면 지면보기
고도비만 환자인 정성호(가명·왼쪽)씨가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피해 혼자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가난할수록 비만에 쉽게 노출되고, 비만 환자는 정상적인 사회·경제 생활에 큰 어려움을 호소한다. 김성룡 기자


민철영(27·가명·서울 동작구)씨는 몸무게가 159㎏(키 1m88㎝)이다.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장기간 약을 복용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몸이 불었다. 일주일에 4~5회 이상이나 먹는 라면도 체중 증가에 한몫했다. 지난해 당뇨·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그에게는 질병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무시하는 말투다.

[심층 리포트] 비만의 사회경제학<상>
소심하고 위축, 우울증 많이 겪어
'게으르다' 편견에 취업도 어려워
"비만 치료에 건보 적용" 주장도



 “‘왜 그렇게 사느냐’ ‘미련해 보인다’는 말을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해요. 심지어 지나가는 애들조차 ‘돼지’라고 손가락질해요. 세상이 싫어 한동안 집 밖에 안 나갔어요. 주변 사람들과 연락도 잘 안 하죠.”



 오기가 발동한 그는 군대 가기 위해 다이어트와 운동에 죽도록 매달렸다. 몸무게를 100㎏까지 줄여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제대할 무렵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취업 전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서류전형까지는 통과했지만 면접의 벽을 넘지 못했다. 어떤 면접관은 “살 때문”이라고 낙방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당신이 일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더 해야 한다”거나 “고객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은 적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민씨는 어머니의 월소득(120만원)에 의지해 살고 있다.



 민씨는 비만, 정확히 말하면 초고도 비만이다. 대한비만학회 기준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25 이상이면 비만, 30 이상이면 고도비만, 40 이상이면 초고도비만이다. 민씨의 BMI는 4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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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만 인구가 늘면서 고도비만이나 초고도비만인 사람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할 뿐 아니라 취업 등 사회적 차별에 시달린다. 일자리를 못 구하니 저소득층으로 떨어지고, 치료비가 없으니 비만은 더 악화된다. ‘고도비만→차별→빈곤→비만 악화’의 악순환 구조가 굳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라고 방치하기에는 사회 문제로 봐야 할 측면이 크다.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국민건강통계(2012년 기준)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가운데 BMI가 30 이상인 고도비만 비율은 5%였다. 1998년 2.3%에서 1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고도비만이 느는 이유는 성인 비만율이 높아져서다. 98년 26%였으나 2012년에는 역대 최고치인 32.4%로 급상승했다. 비만은 당뇨·고혈압·고지혈증(高脂血症) 등 만성질환을 유발한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차별이다.



 동국대 일산병원 오상우(가정의학과) 교수는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 비만 현상이 생기고, 이 때문에 사회 적응을 제대로 못해 더 가난해지고, 값싼 정크푸드(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식품)로 끼니를 때워 더 뚱뚱해진다”고 지적했다.



 비만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키 1m68㎝ 몸무게 113㎏인 정성호(34·가명)씨는 지난해 중순 병원 간호조무사 일을 그만뒀다. 같은 실수라도 그가 하면 상사로부터 거친 욕설이 날아왔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병원장과 동료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댔다. 몸집이 너무 크다고 은연중에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다 끝내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하러 오기로 했으니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은 생각도 못한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20개도 안 된다. TV나 컴퓨터도 가까이하지 않는다.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단칸방에서 고양이와 살고 있다. 말 그대로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세다.



 비만 때문에 실직하면 소득이 감소하고 최악의 경우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저소득층의 비만율(2012년 34.3%)이 고소득층(29.5%)보다 높은 이유다. 두 계층 간 차이(4.8%포인트)는 14년 전인 98년(1.8%포인트)보다 더 벌어졌다.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질병이다. 그런데도 비만 환자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대한비만대사(代謝)외과학회 최승호(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 회장은 “고도비만인 사람들은 ‘게으르다’ ‘미련하다’는 편견 때문에 대인관계가 단절되고 우울증을 겪는다”면서 “비만 치료와 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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