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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과학 인해전술 … 논문도 새치기

중앙일보 2014.03.04 00:59 종합 10면 지면보기
‘네이처 지네틱스(Nature Genetics)’는 유전학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국제저널이다. 최근 발간된 3월호 표지를 한국 연구자들이 장식했다.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최도일 교수가 이끈 연구팀이다. 이들은 세계 최초로 고추 유전체(지놈) 지도를 해독해 영광을 안았다. 지난 1월 온라인판에 먼저 게재됐고(중앙일보 1월 21일자 14면) 이후 표지논문으로 선정된 것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3일 기자에게 “하마터면 중국에 뒤통수를 맞을 뻔했다”고 털어놨다. 뒤늦게 연구에 뛰어든 중국 연구팀이 대규모 인력·장비를 투입해 논문을 먼저 발표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진행 중성미자 연구
돈·인력 투입 논문 먼저 발표
올 고추지놈 해독도 뺏길 뻔

 최 교수팀은 2011년부터 독자적인 고추 지놈 해독에 도전했다. 13개국 학자 300여 명과 공동으로 토마토 지놈 지도를 분석하며(2012년 완성) 기술 자립의 필요성을 절감해서다.



 최 교수팀은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렸고 국제학회가 열릴 때마다 진척 내용을 공개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중국이 고추 지놈을 해독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중국 BGI와 쓰촨(四川)성 고추연구소가 고추 지놈을 분석해 국제저널 ‘사이언스’에 낼 예정이라고 했다. BGI는 국립 베이징(北京)지놈연구소로 출발한 세계 최대 유전체 분석기업이다. 대당 10억원씩 하는 세계 최고 지놈 분석장비를 130대나 갖고 있다. 연구인력도 5000명에 달한다.



 최 교수는 “연구 성과가 있으면 학회에 보고하는 게 국제 관례”라며 “중국처럼 몰래 연구를 해 다른 연구팀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상도의(商道義)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팀은 중국에 ‘새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급히 논문을 작성해 ‘네이처 지네틱스’에 보냈다. 열흘 뒤 BGI가 ‘사이언스’에서 논문 게재를 거절당하곤 ‘네이처 지네틱스’에 다시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네이처 지네틱스’는 양측에 논문 보완을 요구했고 최 교수팀은 10월 말 다시 논문을 제출했다. 중국도 보름 뒤 다시 논문을 보냈지만 ‘네이처 지네틱스’는 최 교수팀 손을 들어 줬다.



 인력·장비를 쏟아붓는 중국의 ‘인해전술’식 전략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노벨상급 연구로 주목받은 중성미자 변환상수 연구 경쟁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본지 2012년 4월 4일자 24면). 2011년 8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수봉 교수팀이 먼저 실험을 시작했지만 이듬해 3월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중국은 검출시설이 80%밖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보다 3배 많은 검출기(6대)를 사용했고 5배 가까운 인력(약 240명)을 투입했다. 최 교수는 “지놈 연구는 결국 사람 싸움, 돈 싸움”이라며 “중국이 이런 식의 연구 경쟁을 계속한다면 이겨 낼 수가 없다”고 우려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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