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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북한, 왜 억류자들에게 이중잣대를 갖다대나

중앙일보 2014.03.04 00:42 종합 29면 지면보기
북한 교화소 콩밭에서 김매기 하는 케네스 배. [사진 조선신보]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북한에 억류됐던 호주 선교사 존 쇼트(75)가 3일 석방됐다. 김정일 출생일인 지난달 16일 평양의 한 사찰에서 종교 선전물을 뿌렸다는 게 북한 당국이 밝힌 혐의다. 2012년 8월 방북 때 평양 지하철에 유인물을 살포한 전력이 있다는 북한 관영매체 보도에 비춰보면 그는 ‘재범’인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체포 16일 만에 출국이 허용돼 가족의 품에 안겼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10월 ‘반공화국 적대행위’ 혐의로 억류했던 6·25 참전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도 체포 42일 만인 12월 초 추방 형식으로 풀어줬다.



 김정은 체제 출범 2년여 동안 외국인이 북한 지역에 들어갔다 체포·구금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선교활동을 했다거나 북한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이른바 ‘반국행위’를 했다는 게 주된 혐의다. 일단 억류해 사죄문 등을 강요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를 밝히도록 하는 패턴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 체제 결속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대남·대서방 적대감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권력 굳히기에 활용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인이나 한국계에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북한의 행태가 눈에 띈다. 2012년 11월 억류당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45·한국명 배준호)의 경우 15개월째 복역 중이다. 다른 미국인 억류자의 경우 외교교섭 등을 거쳐 조기 석방했던 것과 다르다. 북한은 메릴 뉴먼 등의 경우 고령임을 감안해 인도적 차원에서 석방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배씨도 당뇨 등 지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 당국은 지난 1월 병원에서 사죄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과 교섭이 원만치 않자 다시 교화소에 수감했다는 전언이다. 인도적 배려와는 거리가 먼 움직임이다.



 한국인 선교사 김정욱씨의 경우도 무성의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김씨를 억류한 북한 당국은 우리 정부의 신원확인 요청에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에야 기자회견에 내세워 공개했지만, 조속한 귀환을 요구한 우리 당국의 대북 통지문 접수조차 거부했다. 이쯤 되면 북한이 틈만 나면 주장해 온 ‘우리 민족끼리’가 공허한 구호로 들린다.



 중국 선양에서는 북·일 적십자회담이 진행 중이다. 북한 공작원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도 다뤄질 예정이다. 북한은 2002년9월 북·일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고이즈미 총리에게 납북 일본인 문제를 사과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납북이나 억류 국군포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북한의 한국인(한국계 포함) 억류에 동족을 얕잡아보는 의식이 깔려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한 느낌이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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