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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파 기용 예상 깬 내부 발탁 … 조직 안정에 초점

중앙일보 2014.03.04 00:40 경제 3면 지면보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3일 오후 서울 소공동 한은 별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며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매파(물가중시 강경파)나 비둘기파(성장중시 온건파)로 구분하기 어려운 중도파.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지켜나갈 정통 한은맨.

한국은행 총재 이주열 지명
물가·성장 사이 색깔 모호
"매파인지 나중에 보시라"
미 테이퍼링 대응이 숙제
국회 인사청문회 첫 대상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에 대한 한은 안팎의 평가다. 당초 시장에선 정부가 경제성장 정책에 발맞춰 줄 인사를 차기 총재로 임명할 거라 예상했지만 내부 출신 발탁이라는 무난한 인사를 선택했다. 한은의 개혁과 변화보다는 한은의 조직 안정성과 중앙은행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과거 한은 부총재 시절,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지 않았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당연직 금통위원으로서 소수 의견을 낸 사례가 없었다. 이정범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이성태 총재 시절엔 금리 인하에 동참했고, 김중수 총재 때는 금리정상화에 동참했기 때문에 특별한 성향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지명 소식이 전해진 뒤엔 채권 금리가 급등했다. 강력한 성장주의자(비둘기파) 총재가 올 거란 시장의 기대감이 깨져서다. 이 후보자는 이날 “매파적 성향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나중에 보시라”며 “예전에 부총재 할 때는 당연직 금통위원으로서 기관(한은)을 대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에서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같은 주요 보직을 지낸 만큼 그가 통화정책에 있어 전문가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그래서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것이란 전망과 기대가 나온다.



김중수 총재의 경우, 2010년 글로벌 경기회복기엔 물가상승 압력에도 7월에야 처음 인상에 나섰다. 지난해 5월엔 예상치 못한 금리 인하 결정으로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주열 후보자는 부총재직 퇴임 뒤 사석에서 “경기가 좋았을 때 한은이 기준금리를 좀 올려놨으면 지금 낮출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만큼 통화정책에 있어 시점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성을 지킨다는 면에서도 내부인사인 이 후보자가 유리하게 작용할 걸로 보인다. 의견을 거의 내지 않았던 그는 2012년 한은을 떠날 때 작심한 듯 김중수 총재와 각을 세웠다. “글로벌과 개혁의 흐름에 오랜 기간 힘들여 쌓아온 과거의 평판이 외면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60년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면서 혼돈을 느낀 사람이 많아졌다”는 게 그의 퇴임사였다. 개혁을 강조해온 김 총재의 조직 쇄신 정책에 대한 쓴소리였다. 한은 내부에서 4년 만의 내부 출신 총재를 대환영하는 것도 그가 한은의 전통을 지켜나갈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새 한은 총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간단치 않다. 바로 앞에 닥쳐있는 큰 과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기조에서 벗어나려면 한국은행이 물가안정뿐 아니라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도 갈수록 커진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통화정책·금융안정뿐 아니라 고용을 포함한 경제 전반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며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의 공조 역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식(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출구전략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성장과 물가안정을 조화롭게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한애란·이지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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