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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고의 부도' 낸 새 정치

중앙일보 2014.03.04 00:38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제목처럼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게, 가끔은 상상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지는 게 한국 정치다.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 상상력을 또 한번 시험했다. 안철수신당 잘 만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뚱딴지같이 민주당과 ‘제3지대 신당’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 정도면 상상력도 만화가적 상상력이 있어야 이해할 수준이다.



 “내 말은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던 안 의원이다. 그렇게 손쉽게 말을 뒤집을 줄 기자는 몰랐다. 야권연대는 없다는 말을 그는 백 번쯤은 했을 거다. 민주당 비판은 그 곱절쯤이다.



 야권연대 안 한다고 했지 합치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다고 할지 모른다. 연애 안 한다고 했으면 동거도 안 하는 게 상식이다.



 민주당이 ‘기초단체장 무공천’을 하기로 해 합친다는 명분은 솔직히 오버다. 민주당이 전당원 투표를 거쳐 기초단체장 무공천을 당론으로 정한 건 작년 7월이다. 그 직후인 7월 29일 기자는 안 의원을 인터뷰했다. 민주당의 공천포기 결정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기초단체의 이슈가 공천문제만이 아님을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알고 있을 텐데 공천 얘기만 꺼냅니다. 공천 문제만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러던 안 의원이 반년도 더 지난 지금 기초무공천에 대해 의미를 과잉 부여하고 있다.



 기초무공천에 대한 새누리당의 약속 위반은 얼마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야권연대는 없다”던 안 의원의 돌변은 약속 위반 아니면 뭔가.



 신당 창당이나 합당이란 행위 자체가 정치적 비행(非行)은 아니다. 얼마 전 선진당이랑 합친 새누리당이 야합이라 비난을 퍼붓는 건 그래서 우습다. 하긴 야권이 합치니 ‘야합(野合)’은 야합이다.



 중요한 건 기초단체 무공천을 고리로 한 안 의원의 설명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액션 같다. 물먹은 지지자들에게 안철수신당의 어려운 현실을 솔직히 고백하고, ‘고의 부도’에 사과부터 해야 했다.



 안 의원의 변심은 대한민국 ‘대안 정치세력’의 실패다. 당초 안 의원 주변에 모인 선거전략가들은 솥[鼎]이 세 발로 서 있는 것처럼 천하삼분을 꿈꿨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와 비슷한 구상이 불가능하진 않은 것처럼 보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지방권력은 삼분 구도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부터 자로 잰 듯한 3등분이었다. YS의 민자당이 5군데, DJ의 민주당과 JP의 자민련이 각각 4군데를 점령했다. 황금분할이 가능했던 건 JP 때문이었다. 민자당에서 팽당한 그는 ‘충청도 핫바지론’ 하나로 충청권을 접수하고, 최각규 후보를 내세워 강원까지 챙겼다.



 98년 제2회 지방선거 때는 노련한 DJP가 연합공천으로 공동정부의 완승(국민회의 6, 자민련 4, 한나라당 6)을 이끌어 내면서 영·호·충 삼각분할 구도를 유지해 나갔다. JP는 서울·경기에 후보를 안 내 고건·임창렬 후보의 승리를 도왔다. DJ는 인천을 JP에게 양보했다. 그래서 자민련이 인천에 상륙하는 일이 일어났다.



 민자당의 분열과 DJP 연합 같은 선거의 ‘구도’, 충청도 핫바지론 같은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는 ‘이슈’, 여기에 ‘인물’ 변수가 결국 선거를 결정한다.



구도와 이슈로만 본다면, 이번 지방선거의 초반 흐름은 단연 새누리당에 있었다. 천하삼분은커녕 열린우리당, 옛 민주당이 2~3등 싸움을 벌이다 거의 전멸한 2006년 지방선거의 2014년 버전이었다. 야당의 승리공식인 ‘정권심판론’이 먹힐 상황도 아니었다. 이대론 신생아인 안철수신당은 청명에 죽느냐 한식에 죽느냐였다.



 그래서 결국 민주당과 합치기로 한 것이라고 기자는 본다. 안 의원과 민주당, 기왕 합친다면 선거에 이기든 지든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 더 이상 ‘헤쳐모여신당’이니 ‘백지신당’이니 하는 소리 듣기 지겹다. 정당이 무슨 떴다방은 아니지 않은가.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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